“경쟁사가 말하는 QLED TV는 그냥 LCD TV다.”-한상범 전 LG디스플레이 부회장, 2017년 1월 CES에서
“OLED는 영원히 안 한다.”-한종희 삼성전자(005930) 부회장(당시 영상디스플레이 사업부장), 2020년 1월 CES에서
법원을 오가던 삼성과 LG의 분쟁이 때로는 합의로, 때로는 판결로 종결된 후 양사의 경쟁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습니다. TV와 대형 디스플레이를 둘러싼 기술 경쟁을 양사가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하기 시작한 건데요.
QLED vs OLED 놓고 ‘말말말’
시작은 2017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에서 양자점발광다이오드(QLED) TV를 출시하면서 비교군을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로 둔 게 시작이었습니다. QLED TV가 OLED TV에 비해 '명암비(밝음과 어둠 간 차이)'도, 밝기도 낫다고 삼성 측에서 강조한 건데요. LG 측은 QLED라는 이름 자체를 문제 삼으며 반격에 나섰습니다. QLED TV는 “LED가 아니라 LCD와 같다”며 공격한 것입니다. 한상범 전 LG디스플레이 부회장이 공개석상에서 대놓고 "자발광 퀀텀닷을 활용해야 진정한 QLED TV"라며 대놓고 저격을 하기도 했습니다.
OLED와 QLED의 차이점을 궁금해하실 독자분들이 있을 것 같은데요. 두 제품은 글자는 비슷해도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작동됩니다. OLED TV는 스스로 빛을 내는 유기물질인 ‘유기발광다이오드’에 전류를 통하게 해 구동됩니다. 화소가 스스로 빛을 내는 '자발광'(自發光) 성질을 지녔다는 점에서 별도의 백라이트가 필요 없죠. QLED TV는 기본적으로는 LCD TV와 비슷한 원리로 구동되지만 퀀텀닷(QD) 필름을 붙여 색의 순도를 높인 점이 특징입니다. 자발광 디스플레이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패널 뒷면에 백라이트와 컬러 필터가 필요합니다.
LG 측은 삼성이 발광다이오드(LED)라는 기술이 포함된 QLED 명칭을 사용하며 자발광 기술이 적용된 것처럼 소비자를 오인하게 했다고 문제 삼은 것이고, 삼성은 QLED TV 기술이 오히려 LG의 OLED 기술보다 우수하다고 반박하고 나선 셈이죠.
엎치락뒤치락 ‘네이밍 전쟁'…2년마다 반복
신경전은 2년 후인 2019년 독일 가전 전시회 IFA에서도 되풀이됐습니다. LG전자(066570)가 IFA 현장에서 삼성전자의 초고화질 8K TV를 두고 “규격에 맞지 않는 가짜”라고 공격한 것입니다. 이후 한 발 더 나가 LG는 삼성전자가 백라이트를 적용하는 TV 제품을 QLED TV라고 광고하는 건 허위·과장 광고라며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습니다.
삼성 역시 LG전자가 OLED TV 광고에서 QLED TV를 객관적 근거 없이 비방했다고 공정위에 신고하며 맞대응에 나섰습니다. 2019년의 TV 싸움은 결국 두 회사가 공정위에 신고한 사건을 상호 취하하면서 무승부로 종결됐습니다.
재밌는 점은 상황은 비슷하지만, 구도만 반대인 신경전이 2년 후에 또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2021년 LG전자가 자사 미니 LED TV 브랜드 이름으로 퀀텀닷과 나노셀 기술에 LED 글자를 합성한 ‘QNED’를 낙점하자 삼성이 반발한 것인데요. 삼성이 차차세대 디스플레이로 개발 중인 '퀀텀닷 나노 발광다이오드' QNED와 이름이 똑같을뿐더러 자사 브랜드 QLED와도 이름이 비슷하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돌고 돌아 ‘적과의 동침’
이로부터 또 2년이 지났습니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인한 TV 수요 절벽 터널을 함께 지나고 있는 양사의 TV 전쟁은 조금 다른 국면을 맞이했습니다. 삼성전자가 LG디스플레이 OLED 패널을 채택한 OLED TV 제품을 하반기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2021년부터 제기되던 삼성과 LG의 ‘OLED 동맹’이 실현된 셈입니다.
3년 전 OLED TV 사업을 영원히 안 한다고 선언했던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은 올해 국내 시장에 10년 만에 OLED TV 신제품을 출시하며 "지금은 어느 정도 (번인이) 개선됐고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데 무리가 없어서 라인업을 도입하게 됐다"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삼성전자로선 안정적인 OLED 패널 수급을 통해 중장기적인 TV 사업 전략 변화를 꾀할 수 있고, LG디스플레이는 ‘세계 1위 TV 업체’를 고객으로 확보해 유의미한 실적 반등 계기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윈윈' 효과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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