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증권거래위원회(SEC)의 바이낸스·코인베이스 제소 영향으로 알트코인 가격이 일주일새 최대 36% 급락했다. 매출의 대부분이 알트코인 거래 수수료에서 나오는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도 덩달아 위기에 빠졌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비트코인을 제외한 알트코인 가격은 지난 7일 SEC의 바이낸스·코인베이스 제소 이후 연일 급락하고 있다. 특히 SEC가 두 거래소 기소문에서 증권으로 특정한 가상자산 19종의 하락세는 걷잡을 수 없이 빠르다. 증권으로 분류된 19종 가운데 하나로 바이낸스와 코인베이스에 모두 상장된 샌드박스(SAND)의 경우 SEC 제소 이후 약 36%에 육박하는 급락을 기록했다. 나머지 가상자산도 지난 일주일 간 20~30%대 가격 하락을 보였다.
반면 이날 비트코인 시장 점유율은 올해 들어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시장 분석 플랫폼 트레이딩뷰에 따르면 전 세계 가상자산 시장에서 비트코인 시가총액이 차지하는 비율을 뜻하는 ‘비트코인 도미넌스(dominance)’는 49.26%다. 비트코인 도미넌스는 SEC의 코인베이스 제소 소식이 알려진 지난 7일부터 급등해 5일만에 2%p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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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트코인이 SEC로부터 미등록 증권으로 분류돼 거래소에서 상장 폐지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투자자들이 비트코인으로 몰린 결과로 풀이된다. 게리 겐슬러 SEC 위원장은 지난 2월 언론 인터뷰에서 “비트코인을 제외한 모든 가상자산이 증권으로 SEC의 관할에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실제로 미국 주식·가상자산 거래 플랫폼 로빈후드는 지난 9일 SEC가 가상자산으로 분류한 솔라나(SOL)와 카르다노(ADA) 등의 선제적인 상폐를 결정하며 시장의 공포심에 불을 지폈다. 지난 2월 SEC의 가상자산 거래 운영 관련 소환 요청을 받았던 로빈후드는 당시 “SEC나 법원이 회사가 지원하는 가상자산이 증권이라고 판단할 경우 가상자산 거래 서비스를 중단할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가상자산 시장에서 알트코인이 정리 수순을 밟으면서 알트코인 거래 비중이 절대적인 국내 거래소는 비상이다. 블록체인 데이터 분석 기업 카이코에 따르면 지난 4월 기준 국내 거래소 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의 전체 거래량 중 알트코인의 비중은 95%에 달해 전세계 최고 수준이다. 미국 금융당국인 SEC의 가상자산 증권 분류 기준이 국내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진 않겠지만 바이낸스와 코인베이스에 상장된 가상자산 대부분이 국내 거래소에도 상장돼 거래량·가격에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가상자산 파생 상품·서비스가 제한된 국내 거래소의 경우 가상자산 거래 수수료에 매출의 95% 이상을 의존하기 때문에 알트코인의 위기는 거래소 존립의 위기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김남국 의원의 대규모 가상자산 보유 의혹과 관련해 압수수색을 받는 등 정치권 논란이 이어졌던 가상자산 거래소가 또다른 악재를 만난 셈이다.
그러나 코 앞으로 닥쳐온 위기 속에서도 거래소들은 두 손이 묶인 상황이다. 국내에선 가상자산 현물 거래만이 허용돼 신규 알트코인 상장을 통한 수수료 수익 증대 외에는 하락장 속에 매출을 방어할 수 있는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한 거래소 관계자는 “국내 거래소는 선물 등 파생상품 거래가 불가능해 알트코인 거래 수수료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당장은 어렵겠지만 정책적으로 가상자산 파생상품의 거래를 열어야 투자자들의 헤지(hedge) 투자가 가능하고 이를 통해 거래소의 매출 안정성도 높아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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