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사기 사태의 여파가 가시지 않은 임대차 시장에서 역전세난의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남은 전세 계약 중 역전세 비중은 지난해 1월 25.9%(51만 7000가구)에서 올해 4월 52.4%(102만 6000가구)로 2배가량 늘었다. 100만 가구 이상이 역전세 위험에 노출돼 있는 것이다. 이 중 29만 가구는 올해 하반기, 31만 6000가구는 내년 상반기에 계약 기간이 끝나 임대인이 임차인(세입자)에게 줘야 할 전세금 하락분만 수십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역전세난의 출발점은 문재인 정부 임기인 2020년 7월 당시 여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 국회에서 강행 처리한 ‘임대차 3법’에서 찾을 수 있다. 그에 따른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의 도입으로 임차인이 기존 2년이었던 전세 계약을 보증금 5% 이내로 인상하면서 1차례 연장이 가능하게 되자 임대인은 4년치 보증금을 한 번에 끌어올렸다. 이후 금리 상승, 부동산 경기 침체 등의 영향으로 전셋값은 하락했지만 고점에서 거래된 전세 계약들의 기간 만기가 다가오면서 역전세난이 본격화됐다.
역전세난은 우리 경제를 뒤흔들 시한폭탄이다. 계약 기간이 끝날 때까지 임대인이 돈을 마련하지 못하면 임차인은 발이 묶일 수밖에 없어 보증금 반환을 둘러싼 마찰이 급증하게 된다. 부동산 시장에 역전세 매물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올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혼란을 막기 위해 보증금 반환 목적의 주택담보대출과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완화 같은 선제적인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보증금 전액이 아닌 신규 보증금과의 차액에 국한해 대출을 허용한다면 가계 부담 증가 문제를 막을 수 있다. 또한 금융 당국의 감독을 통해 단기적으로 전세금 반환 목적이 분명한 임대인 선별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
은행권은 적극적인 사회 공헌과 임대차 시장 전반에 대한 지원 확대로 금융 당국의 정책을 뒷받침해야 한다. 4대 시중은행인 KB국민·신한·우리·하나은행은 지난해 33조 원에 가까운 이자 이익을 거뒀다. 2021년보다 20% 넘게 증가한 규모다. 4대 시중은행 모두 총 영업이익 가운데 90% 이상이 이자 이익이었으며 증가분의 약 40%는 예대금리차 확대, 약 60%는 대출 자산 증가 때문에 발생했다. 연간 1조 원 이상의 성과급은 직원들에게, 7조 원이 넘는 자금은 배당금으로 주주들에게 각각 지급됐다.
국민이 역전세난과 고금리로 힘든 시기를 보내는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다. 이와 관련해 윤석열 대통령은 올 2월 은행을 공공재로 규정하면서 “은행의 ‘돈 잔치’로 인해 국민들에게 위화감이 생기지 않도록 관련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문재인 정부 임기부터 본격화된 금리 인상과 대출로 은행권은 역대급 실적을 쌓았다. 그렇기에 이제는 임대인을 위한 낮은 금리의 전세보증금 반환 대출 상품 개발 등 국민의 고통을 분담할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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