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전력 시장의 룰을 결정하는 위원회의 구성이 조만간 개편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전력(015760) 적자 보전 문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에너지 업계를 중심으로 전력거래소 산하 위원회에 민간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옴에 따라 민간발전협회와 전력거래소가 각각 관련 위원회의 개선안을 모색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전력 정책에 시장 원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가운데 정책 거버넌스 개편을 놓고 갈등도 예상된다.
18일 에너지 업계에 따르면 민발협은 최근 법무법인 태평양에 규칙개정위원회·비용평가위원회 등 전력거래소 산하 위원회의 운영 개선 방안에 관한 연구 용역을 의뢰했다. 전력거래소 역시 ‘전력시장 위원회 구성 및 운영 체계 개편에 관한 연구’라는 주제로 용역을 추진하고 있다. 전력거래소 산하 위원회는 전력시장운영규칙 개정, 발전 단가 산정, 전력 계통 운영, 전력 시장 감시 등과 관련한 각종 제도·정책을 결정하는 역할을 맡아 국내 전력 시장에 끼치는 영향력이 상당하다.
민발협과 전력거래소 모두 연구 용역 과정에서 각 위원회에 민간 발전사를 대변할 위원을 늘리는 방안 등을 들여다볼 것으로 예상된다. 이 과정에서 해외 사례, 국가 핵심 인프라로서 전력망에 대한 정부 통제 방안 등을 두루 살펴볼 것으로 보인다. 전력거래소 관계자는 “산하 위원회의 운영 개선 방안을 전반적으로 검토하는 취지”라고 말했다.
두 기관이 각각 같은 주제의 용역을 추진하는 것은 위원회 구성 방안과 운영 등과 관련해 이견이 존재한다는 뜻이 함축돼 있다. 특히 민간 발전 업계에서는 전력거래소 산하 위원회의 인적 구성이 당국 쪽에 치우쳐 있다는 불만이 적지 않다. 가령 전력시장운영규칙 개정을 총괄하는 규칙개정위의 경우 위원 9명 중 5명(산업통상자원부, 한국전력, 한국중부발전, 전력거래소 2명)이 정부 및 정부 입김이 통하는 공기업 관계자로 꾸려져 있다. 민간 발전사 중에는 SK E&S 관계자 1명뿐이다.
그간 전력거래소 산하 위원회에서는 위원 간 협의를 통해 사안을 심의·의결하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에너지 가격 급등에 따른 한전의 실적 악화 등이 불거지면서 정부와 업계 간 정책을 두고 견해차가 커졌고 위원회 의사 결정도 이견 조정이 안 되면서 ‘다수결’로 의결하는 사례가 늘어났다. 대체로 한전 적자 보전 문제와 관련이 깊은 사안의 경우가 특히 문제였다. 그러다 보니 기업의 견해를 반영해줄 인사가 위원회에 얼마나 있는지가 중요해졌다.
실제 지난해 5월 규칙개정위가 액화천연가스(LNG)·양수·수력발전 등 친환경 발전의 용량요금(CP)을 줄이는 것을 골자로 하는 전력시장운영규칙 개정안을 의결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CP는 한전이 민간 발전사에 지급하는 일종의 대금이다. 당시 규칙개정위는 이 사안에 관해 이례적으로 무기명투표에 부쳐 참석위원 9명 중 6명이 찬성했다. 업계에서는 민간 쪽 의견이 제대로 고려되지 않았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이에 지난해 10월 열린 규칙개정위에서는 정동희 전력거래소 이사장이 직접 “2023년 안에 개선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가 지난해 12월부터 실시한 전력도매가격(SMP)상한제도 위원회 구성 논란에 기폭제 역할을 했다. SMP상한제는 한전 적자를 최소화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다. 정부는 SMP상한제 시행에 따른 민간 발전 업체의 손실을 보상해주겠다고 했지만 최근 열린 규칙개정위 산하 실무협의회에서는 집단 에너지 업계에서 제기한 무부하 비용 보상안 개편과 고정비 일부 보전안이 기각됐다. 이와 관련해 전력 업계의 한 관계자는 “집단 에너지 업계에서는 다음 규칙 개정 때 보상을 다시 촉구할 방침”이라며 “법적 소송도 검토하고 있다”고 격앙된 분위기를 전했다.
발전 단가 정산을 총괄하는 비용평가위의 구성에 대해서도 민간 측 비판이 나오고 있다. 비용평가위에는 민간 발전사 위원이 없다. 산업부 및 관련 산하기관(4명)과 전문가(5명) 위원 9명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런데 석탄화력발전소의 표준 투자비 산정 등을 두고 전력 당국과 민간 측 의견 차가 쉽게 좁혀지지 않으면서 업계에서는 “현장 사정을 아는 민간 관계자가 왔으면 이견 조정이 수월했을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규칙개정위·비용평가위 등의 공공적 성격을 고려하면 민간 측 의석 확대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세종 관가의 한 관계자는 “비용평가위에 민간 위원이 참여할 경우 ‘셀프’로 발전 단가를 책정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부 관계자는 “연구 용역 결과가 나온 뒤 위원회 운영 문제를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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