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저에게 왜 소설가가 됐느냐고 물어요. 이런 소설 ‘고래’를 왜 썼냐는 것이죠. 저는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합니다. 사람들은 소설을 읽으면서 불행에 빠진 사람이 자기 혼자만은 아니라고 느낍니다. 그들의 불행에 대해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된다면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설 ‘고래’의 작가 천명관은 17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의 ‘고래 북토크’에 나와 자신의 소설과 인생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소설 ‘고래’는 올해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르며 주목을 받았다. 천 작가가 부커상 이후 공개 석상에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04년 출간된 이 소설은 국밥집 노파, 금복, 춘희 세 여성의 3대에 걸친 거친 삶을 통해 인간의 욕망과 성취, 그리고 몰락을 그려낸 소설이다. 올해 부커상에서 주목받으면서 최근 베스트셀러에서 역주행하고 있지만 저자는 아직도 얼떨떨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남들은 저에게 한 가지 우물을 파지 않고 영화도 하고 보험회사도 다니다가 소설도 썼다가 이런저런 일들을 하느냐고 묻는데, 사실 이들을 모두 실패했어요. 지금의 다른 직업인 영화감독에 성공했으면 소설을 아예 안 썼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고래’ 출간으로 짧은 성공을 이룬 후 사실상 작가 활동을 중단하고 있었다. 그리고 부커상은 이제 다시 천 작가를 세상에 불러냈다. 그는 “이런 자리가 익숙하지 않다. 거의 7~8년 만에 (토크쇼에) 나왔다”고 웃었다.
천 작가는 이어 “대개 사람들은 실패하고, 세상이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것에 불만을 갖지만 그렇다고 해서 분명한 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작가들이 나서서 소설을 통해 세상을 재구성해서 완전한 세계를 만들려고 한다. 어쨌든 저는 그랬다. 소설 ‘고래’도 그렇고, 그래서 호응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죄와 벌’ ‘이방인’ ‘백경’ 등 이른바 고전이라는 작품들은 모두 실패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라며 “문학의 위대함은 그렇게 우리가 책을 통해 연대하고 공감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부커상 후일담도 흥미롭다. ‘정말 지난달 23일 수상자 발표 현장에서 상을 받을지, 못 받을지 몰랐느냐’는 독자의 질문이 나왔다. 그는 “수상자(불가리아 작가 겸 시인인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는 사전에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분명히 몰랐다. 그래도 에이전시에서 혹시 모르니 수상 소감을 준비하라고 했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통역가에게 수상 소감을 주면서 ‘만약 상을 못 받으면 반드시, 그 즉시 삭제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랬더니 그 친구가 ‘내 휴지통에는 무수한 수상 소감이 있다. 박찬욱 감독의 것도 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작가를 희망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무엇보다 책을 많이, 다양하게 읽는 게 중요하다”며 “현장의 작가들을 만나서 얘기하다 보면 생각보다 책을 많이 안 읽은 분들이 많다. 저는 작가이기 이전에 충직한 독자”라고 강조했다.
‘고래’가 무슨 의미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가벼운 한숨을 지었다. “저는 원래 제목으로 ‘붉은 벽돌의 여왕’을 하고 싶었는데 당시 출판사에서 ‘왕’이나 ‘여왕’이 제목에 들어가면 망한다며 반대를 했다. 결국 다른 제목을 찾다가 ‘고래’로 정했다. 저는 여전히 아쉽다. 물론 잘 맞는 것 같기도 하다”고 웃었다.
새 책 출간 계획에 대해서는 “창비에서 연재하다 절반 정도에서 중단했던 소설이 있는데 올해 안에 마무리해 출간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이어 “(이번 도서전에)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왜 책이 안 팔리나 생각해본다. ‘마음의 양식’을 꾸준히 얻는 사람들이 많으니 우리 문학의 전망도 밝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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