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나를 존재하게 해 준 나라이기에 각별합니다. 또 어머니의 노력이 없었다면 저는 한국에 있지 못했을 거예요. 가족들의 노력과 희생에 감사하고 자랑스럽게 해드리고 싶습니다.”
재일교포 3세 어머니와 아프리카계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한국계 바이올리니스트 랜들 구스비(27). 2020년 24세의 나이로 데카 클래식과 독점 계약을 맺어 화제가 된 바 있는 차세대 연주자 구스비가 19일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에서 기자들과 만남을 가졌다.
7세의 나이로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한 구스비는 13세에 청소년 음악회를 통해 뉴욕 필하모닉과 데뷔 무대를 올리는 등 일찍이 두각을 나타냈다. 구스비가 음악 인생의 전환점으로 꼽는 시기는 2011년 바이올린 거장 이츠하크 펄먼이 운영하는 음악 프로그램이다. 그 이후 구스비는 펄먼의 가르침을 받기 시작해 현재는 줄리어드 음악원에서 그를 사사하고 있다. 구스비는 “펄먼이 기교에 대해 묻는 내게 ‘음악의 의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남겼는데 답변을 하지 못했다. 그 이후 음악의 의미를 중요하게 생각하게 됐다”고 밝혔다.
구스비는 2021년 데카 레이블에서 데뷔 앨범 ‘뿌리’를 발매하고 지난해 미국에서 권위 있는 에이버리 피셔 커리어 그랜트를 수상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구스비의 ‘뿌리’는 그의 음악을 정의하는 데 중요한 단어다. 구스비는 “14세까지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작곡가의 작품을 전혀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앨범 작업을 하면서 많은 음악들을 접하게 됐다”면서 “‘블랙 라이브즈 매터(Black Lives Matter)’ 운동 이후 클래식 음악계에서 흑인이 소외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작품을 발굴하고 클래식 음악과의 연결고리를 찾는 것을 조명하려 했다”고 말했다. “그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작곡가들의 작품은 생소하지만 덕분에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오는 22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피아니스트 주 왕과 함께 하는 공연에서도 독창적인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프랑스 여류 작곡가 릴리 불랑제의 두 개의 소품에 이어 미국에서 재즈의 영감을 받아 탄생한 라벨 바이올린 소나타 2번, 흑인 클래식 작곡가 윌리엄 그랜트 스틸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모음곡’을 선보인다. 마지막으로 연주하는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9번 ‘크로이처’에 대해서 구스비는 “베토벤이 절친했던 흑인 바이올리니스트 조지 브리지타워에게 헌정하려고 했던 곡”이라면서 “이번 공연에서는 ‘브리지타워 소나타’라고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19로 소외된 사람들을 둘러보고 공감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앞으로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비롯해 한국·일본 등 낯선 작곡가의 음악에도 관심을 가지려 한다"면서 향후 “오래도록 음악과 함께 여정을 계속하고 싶고, 클래식을 향유하는 관객이 다양한 배경을 가질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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