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페달을 밟고 지뢰밭 속을 달리는 게 사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멈추면 어딘가에서 터지겠죠. 넘어지지 않으려면 계속 달려야 합니다.”
첨단 섬유 기업 웰크론(065950)을 이끌고 있는 신정재 사장은 사업 다각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이같이 말했다. 웰크론은 1992년 설립 이후 초기에는 카메라 등 광학 제품을 청소할 수 있는 극세사 클리너를 개발·생산·판매했다. 이후 극세사 침구 사업에 진출해 국내 주요 백화점에 입점하고 200여 개의 대리점을 운영하며 강력한 침구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웰크론의 변신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동안 축적해온 첨단 섬유 기술력을 바탕으로 직경이 머리카락 두께의 5000분의 1 수준인 나노 섬유을 개발했고 스텐트용 인공 혈관도 생산하고 있다. 아울러 방위산업에서 주로 쓰이는 고품질 섬유 기반 방탄 제품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면서 첨단 종합 섬유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
신 사장의 경영 철학은 ‘변화하지 않는 기업은 시장에서 생존할 수 없다’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신생 창업 기업의 5년 차 생존율은 27.5%로 해가 지날수록 시장에 생존해 있을 확률이 떨어진다. 신 사장은 “30년 차 기업의 생존율 1.8%에 불과하다고 한다”며 “웰크론이 지난 31년 동안 사업을 이어올 수 있었던 비결은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한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웰크론은 새로운 분야에 진출할 때마다 해당 분야에서 기술 혁신을 통해 ‘메기’ 역할을 해왔다. 가장 대표적인 분야가 침구 사업이다. 신 사장이 웰크론에 합류했던 2010년 당시 침구 브랜드 ‘세사’는 국내 주요 백화점에 입점한 상태일 정도로 고급 제품 이미지를 이미 확보하고 있었다. 하지만 판매 채널이 한정되다 보니 매출이 좀처럼 성장하지 못하는 한계도 있었다. 신 사장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직영점 위주로 판로를 확장하는 대신 제품과 서비스를 본사가 직접 관리함으로써 프리미엄 이미지를 유지하는 전략을 택했다. 신 사장은 당시 웰크론 매장기획팀 부장으로 합류하면서 세사의 첫 번째 로드숍인 잠실직영점 오픈을 주도했다. 신제품 개발, 로드숍 디자인, 제품 구성, 판매 전략까지 그가 손대지 않은 것이 없었을 정도로 공을 들였다. 신 사장이 직접 판매 현장에서 일하면서 소비자들을 상대했던 경험이 가장 큰 자산이 됐다. 신 사장은 “2년 동안 소비자와 직접 대면하며 판매를 해봤기 때문에 어떤 제품, 어떤 컬러가 잘 나간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었다"며 “현장 경험 덕분에 본사에서 진행되는 신제품 품평회 때 ‘어떤 것이 잘 팔릴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놓으면 이후 ‘적중률’이 높았다”고 전했다.
세사 브랜드는 직영점 진출 이후 성공 가도를 달렸다. 세사가 운영하는 로드숍 수는 2012년 100개를, 2013년에는 150개를 돌파했다. 올 6월 기준으로는 전국에 200개가 넘는 매장이 운영되고 있다. 이마트와 코스트코 등 대형마트에도 100곳이 넘는 매장을 오픈했다. 단순히 양적 성장에만 집중한 것은 아니다. 2016년 플래그십 스토어 ‘세사 에디션’을 오픈하며 고급 브랜드 정체성을 유지했다. 특히 연구개발(R&D)에 지속적으로 투자해 2020년 국내 최초로 열 전도성이 높은 냉감 원단이 체열을 빠르게 흡수·배출하는 ‘아이스침구’를 개발했다. 아이스침구는 국내에 냉감 침구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며 이제는 여름철 필수 아이템으로 자리잡았다. 지난달에는 미국 시장에 수출하는 쾌거를 거두며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하는 데 성공했다.
극세사 클리너에서 침구 사업으로 영역을 넓혔지만 신 사장은 “웰크론의 도전은 이제 막 시작했다”고 잘라 말했다. 그의 시선은 이제 침구를 넘어 첨단 섬유산업에 향해 있는 것이다. 웰크론의 대표 제품으로 자리잡은 침구 사업의 경쟁력을 탄탄히 유지하면서 바이오·방산 등에 섬유 기술을 적용할 수 있는 분야를 개척하고 있다.
바이오 분야는 이미 2016년 진출했다. 웰크론은 2016년 인공 혈관 및 제조 방법에 관한 특허를 획득했고 국내 의료 기기 업체에 스텐트(혈관의 내강을 벌리는 기구)용 제품을 납품하고 있다. 그동안 축적한 섬유 기술력을 바탕으로 PTFE(Polytetrafluoroethylene)라는 생체 적합성 소재를 사용해 부드럽고 유연한 튜브를 개발한 것이 주효했다. 신 사장은 “지속적인 R&D를 통해 인간의 혈관을 완벽히 대체할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하는 것이 목표”라며 “그동안 섬유 분야에서 쌓아온 기술력에 새로운 R&D를 더해 섬유의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우리나라의 미래 먹거리로 주목받고 있는 방산 분야에는 2010년 일찌감치 뛰어들어 경쟁력을 키워오고 있다. 웰크론은 특수 소재를 사용한 방탄·방검·방폭 제품을 개발·생산해 2015년 대통령 경호처에 방탄복을, 2016년 경찰청에 방탄방검복을, 2020년 방사청에 방탄판을 공급했다. 이달부터는 새 공장을 가동해 방산 포트폴리오를 개인용 방탄 제품에서 군용 선박이나 함정, 전투차량, 지뢰방호차량(MRAP) 방탄판 제품으로 확장할 계획이다.
웰크론의 출발점인 극세사 클리너의 경우 친환경 제품으로 업그레이드해 글로벌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극세사 클리너는 제품에 손상을 주지 않으면서 미세먼지까지 완벽하게 제거해준다. 2000년 미국 3M에 독점 공급해 기술력을 인정 받았다. 신 사장은 “최근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이 각광받고 있는 세계적 흐름에 맞춰 친환경 트렌드에 따라 제품군을 개편하고 있다”며 “페트병을 리사이클한 원사, 미생물에 의해 자연 분해되는 생분해성 섬유 등 환경친화적인 소재를 이용해 극세사 클리너 제품을 개발, 해외 수출에 나서고 있다”고 전했다.
웰크론은 코로나19 팬데믹이 정점에 달했던 2020년과 2021년 사상 최대 매출과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모두가 위기였던 시기에 오히려 눈부신 성장을 이뤄낸 것이다. 비결이 무엇일까. 신 사장은 “오프라인 유통 채널의 침체에도 불구하고 리빙 부문이 괄목할 만한 성장을 거뒀고 투자를 계속해왔던 방산·필터 등 첨단 소재 부문에서 신규 수주가 급증했다”며 “위기에 강한 웰크론의 저력을 유감 없이 보여준 시기였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웰크론은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19 팬데믹 등 세 번의 큰 위기 속에서 오히려 성장한 기업”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위기 돌파의 첨병은 바로 마스크 필터였다. 섬유 기술력을 바탕으로 발 빠르게 개발한 KF94 마스크 필터가 엄청나게 팔리며 오히려 매출 증가라는 성과를 이뤄냈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끊임없이 진화해온 신 사장의 경영 DNA가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신 사장은 “새로운 기술과 제품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개발해내지 않으면 기업은 살아남을 수 없다”며 “고객 만족을 넘어 새로운 가치를 지닌 독보적인 제품을 만들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일념으로 앞으로도 경영에 임하겠다”고 힘줘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