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한국의 국제 회계투명성 순위가 47위에 불과한데도 금융당국이 기업 회계·감사 규제를 일부 완화하면서 자본시장에 부정적 신호를 줄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영식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은 지난 20일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열린 회계현안 세미나 ‘빅데이터와 AI시대의 회계감사’에서 “이번 금융당국의 보완 방안은 회계 개혁 안착에 중점을 두면서 기업 부담을 합리적인 수준에서 완화하는 방안을 찾기 위해 고심을 거듭한 결과로 이해하고 있다”면서도 “다만 기업 부담을 고려한 완화 조치가 자칫 우리 자본시장 투명성에 부정적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김 회장의 이번 발언은 금융위원회의 앞선 회계제도 보완 방안 발표 후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이란 분석이다. 금융위는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는 현재대로(자유 선임 6년+감사인 지정 3년) 유지하면서 감사인 직권 지정 사유를 대폭 완화하고, 자산 5000억 원~2조 원 사이 상장사의 연결내부회계감사제도 도입을 내년 시행에서 5년 유예했다.
김 회장은 회계 투명성 후퇴를 우려했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매년 발표하는 국제 회계투명성 순위에서 한국은 올해 총 63개국 중 47위를 차지했다”며 “회계 개혁 이전 매년 최하위에 머무르던 상태는 벗어났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고 평가했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매년 발표하는 국제 회계투명성 순위에서 한국은 올해 총 63개국 중 47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53위에서 소폭 개선됐다. 한국 순위는 2017년 63위, 2018년 62위, 2019년 61위로 최하위권이었으나 2018년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를 도입한 후 2020년 46위, 2021년 37위까지 올랐다. 그러다 오스템임플란트, 우리은행 등 대규모 횡령 사건이 발생하며 다시 떨어졌다.
회계 투명성 순위가 하위권에 머무는 현실을 고려할 때 감사보수가 늘어난 문제를 지적하기 보다는 감사 서비스를 높이는데 집중해야 한다고도 지적했다. 김 회장은 “최근 몇 년간 상승한 감사보수에 대해 일부 비판적 시각이 있는 것으로 안다”며 “기업들이 감사 보수가 충분히 지불할 가치가 있다고 느낄 만한 회계 및 감사서비스의 품질을 높여가는 것이 선결과제다”고 밝혔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회계 업계에도 새로운 기술 도입이 본격화하면서 협회 차원의 지원과 당국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새로운 기술은 글로벌 대형 회계법인에 편중돼 있고 여전히 글로벌 법인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이 강하다”며 “데이터 보안에 대한 우려 등 새로운 기술을 바라보는 부정적 시선 때문에 감사 현장에서 새로운 기술을 활용하는 데 어려움이 있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난관을 극복하려면 감사인 스스로 기술 변화에 대비해야 할 뿐만 아니라 기업, 투자자, 감독당국 등 이해관계자 모두가 새로운 기술에 대한 인식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공인회계사회 차원에서도 국내 회계법인을 돕기 위한 조직을 꾸렸다. 다양한 분야 전문가를 모아 테크놀로지 이노베이션 그룹(Technology Innovation Group)을 구성해 최근 활동을 시작했다.
이날 세미나에선 △김재동 삼일회계법인 파트너 △박원일 삼정회계법인 상무 △이승영 안진회계법인 수석위원 △손동춘 한영회계법인 파트너 △김태식 한국공인회계사회 본부장이 발제에 나서 실제 현장에서 적용되는 최신 기술을 소개하고 이에 따른 영향을 분석했다. 발표에 따르면 빅데이터 분석 기술을 활용해 전통적인 샘플 테스트 방식을 벗어나 전수 조사의 감사를 진행하고, 로봇 프로세스 자동화로 사람이 막대한 시간을 투입하던 반복·단순 작업을 훨씬 더 신속하고 정확하게 수행하게 됐다. 인공지능은 분식 가능성이 높은 거래의 형태를 학습하고, 의심 거래를 스스로 찾아내는 단계까지 이르렀다는 것이 법인들 설명이다. 가상자산 감사에는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