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000270)가 미국 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대 기업’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릴 정도로 영향력을 인정받은 것은 대대적인 브랜드 혁신의 결과물이다. 모빌리티 기업으로 이미지를 탈바꿈하고 새로운 디자인 철학을 적용한 전기차 등 신차를 대거 선보이며 변화를 거듭한 점이 브랜드의 가치를 끌어올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기아는 2021년 1월 기아자동차에서 기아로 31년 만에 사명을 변경하며 종합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 회사의 정체성을 바꿨다. 내연기관 자동차를 제조해 판매하는 기존 사업 모델에서 벗어나 전기차는 물론이고 목적기반차량(PBV), 커넥티드카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겠다는 취지였다.
송호성 기아 사장은 당시 온라인으로 개최한 ‘CEO 인베스터데이’에서 “기아는 차를 제조하고 판매하는 것에서 나아가 고객에게 혁신적인 모빌리티 경험을 제공하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밝혔다. 회사의 체질 자체를 바꾸겠다는 과감한 선언이었다.
사명과 함께 로고와 디자인 철학도 새로 도입했다. 특히 기아는 새 디자인 철학인 ‘오퍼짓 유나이티드(상반된 개념의 창의적 융합)’를 발표하며 이를 적용한 첫 전용 전기차 EV6를 글로벌 시장에 선보였다. 이를 기점으로 기아는 미래 지향적이면서도 대담하고 간결한 디자인을 도입하며 브랜드에 ‘젊은 감각’을 입혔다는 평가를 받는다.
기아의 디자인 혁신에 외신도 주목했다. 깐깐하기로 유명한 독일의 3대 자동차 전문지(아우토빌트·아우토자이퉁·아우토모토운트슈포트)는 EV6에 일제히 호평을 쏟아냈다. 특히 아우토자이퉁은 ‘오퍼짓 유나이티드’가 반영된 디자인에 대해 “우아하고 첫눈에 반할 만하다”는 찬사를 보냈다.
성과는 숫자로도 증명됐다. 기아는 지난해 유럽에서 54만 2423대를 판매하며 사상 처음으로 현대차(005380)(51만 8566대)의 판매량을 넘어섰다. 유럽 시장 점유율도 4.8%로 현대차(4.6%)를 앞질렀다.
같은 기간 미국에서도 69만 3549대를 판매하며 역대 두 번째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올해 들어서도 기아는 선전하고 있다. 기아는 지난달 미국에서의 판매량이 7만 1497대를 기록하며 전년 대비 23.4% 증가했다. 현대차(제네시스 포함)가 판매량으로는 7만 5606대로 더 많았지만 증가율은 기아가 현대차(18.4%)보다 높았다.
전기차뿐 아니라 상품성 있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제품군을 촘촘히 구성한 점 역시 기아의 브랜드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다. 텔루라이드는 지난해 미국에서 준대형 SUV 가운데 5번째로 많이 팔렸다. 기아는 지난달까지 텔루라이드와 스포티지만으로도 현지에서 10만 대 이상을 팔았다. 인도에서는 현지 전략형 소형 SUV 크레타와 쏘넷을 앞세워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연간 판매량 80만 대를 돌파했다.
수요가 몰리며 기아는 미국에서 가장 ‘웃돈’이 많이 붙는 자동차 제조사로 등극하기도 했다. 자동차 정보 사이트 에드먼즈닷컴에 따르면 기아는 지난해 말 기준 공식 가격보다 평균 약 6% 높은 가격에 판매됐다. 약 4% 높은 가격에 팔린 일본 혼다, 영국 랜드로버보다 웃돈이 더 붙었다.
브랜드 가치 상승은 중고차 잔존 가치의 급등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잔존 가치는 일정 사용 기간이 지난 뒤 중고로 차를 되팔 때의 가격을 뜻한다. 소비자가 신차를 매수할 때 중요한 지표가 된다. 미국에서 기아의 중고차 잔존 가치는 2018년 39.7%에서 2022년 55%로 급등했다. 순위로 보면 35개사 중 26위에서 2위로 껑충 뛰었다.
기아는 혁신적인 제품을 선보이는 작업에 속도를 내며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세계 최초의 대형 3열 전기 SUV ‘EV9’을 출시한 데 이어 2030년 PBV 시장 세계 1위 달성을 목표로 연간 최대 15만 대를 생산할 수 있는 PBV 전기차 전용 공장을 경기 화성에 건설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고객 맞춤형 PBV를 생산해 2030년까지 연 100만 대를 판매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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