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업황 반등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는 가운데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가 업황 반전 열쇠로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지목하고 적극적으로 사업 확대에 나섰다. 메모리 판매 단가와 수량을 동시에 늘려 실적 반등을 꾀하고 장기적으로는 미래 성장 동력까지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HBM은 여러 개 D램을 수직으로 쌓아 일반 D램보다 데이터 처리 속도를 높인 제품으로 인공지능(AI)용 그래픽처리장치(GPU)에 탑재된다.
26일 시장조사 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엔비디아의 H100·A100, AMD의 MI200 등 HBM을 탑재하는 AI 가속기 칩의 총 HBM 용량은 2억 9000만GB로 전년 대비 60% 가까이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트렌드포스는 2024년에도 이러한 성장세가 지속돼 전년 대비 30% 이상 HBM 용량 증가가 나타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는 마이크로소프트(MS)·구글 등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챗GPT 모먼트 이후 초거대·생성형 AI 상용화에 고삐를 죄며 AI향 메모리 수요가 급증한 결과다. AI가 빠르고 원활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고용량 데이터를 단시간에 처리할 수 있는 HBM 탑재가 필수다.
AI 산업의 빠른 팽창은 메모리 업계에는 단가와 판매량을 동시에 끌어올릴 기회다. 데이터센터향 GPU 판매 가격에서 차지하는 HBM의 비중은 30%대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단품 가격도 기존 D램과 비교해서 2배 이상 높다. 현재 HBM 시장 규모는 전체 D램 시장의 1.5% 수준이지만 2025년까지 연평균 45%에 달하는 고성장이 예정돼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업체들도 발 빠르게 HBM 사업 확대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지난해 글로벌 HBM 시장에서는 SK하이닉스가 시장점유율 50%, 삼성전자가 40%로 시장 1~2위를 달리고 있다.
시장점유율 면에서 다소 뒤진 삼성전자는 4분기 HBM3 대량 양산을 시작하며 본격적인 추격에 나선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올 4분기부터 삼성전자는 북미 GPU 업체에 HBM3 공급 시작이 본격화될 것으로 기대된다”며 “삼성전자 전체 D램 매출에서 HBM3이 차지하는 매출 비중은 올해 6%에서 2024년 18%까지 확대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도체 사업을 이끄는 수장인 경계현 삼성전자 사장은 최근 임직원 소통 채널인 ‘위톡’에서 “AI 시대가 도래하면 폭발적으로 데이터 양이 증가하면서 AI의 성능과 효율을 높여주는 반도체의 중요성도 높아지기 때문에 삼성이 개발하고 있는 HBM이 당장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강조했다. 비슷한 시기 삼성전자는 ‘스노우볼트’ ‘샤인볼트’ ‘플레임볼트’ 등 차세대 HBM 제품으로 추정되는 상표권들도 앞다퉈 특허청에 출원했다.
시장 1위인 SK하이닉스는 한 세대 빠른 제품 개발과 양산으로 주도권을 이어가겠다는 계획이다. SK하이닉스는 내년 상반기 양산을 목표로 HBM3 다음 세대 모델인 HBM3E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최대 고객사인 엔비디아는 최근 SK하이닉스에 5세대 HBM인 ‘HBM3E’ 샘플 제공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은 15일 열린 SK그룹 확대경영회의에 참석해 “AI 시장 확대로 HBM 수요가 높아지면서 올 하반기 시장을 긍정적으로 전망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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