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올해부터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시행됨에도 관할 부처가 중구난방으로 흩어진 탓에 기업들의 혼선이 커진다는 지적이 회계 업계에서 나왔다. 우리나라 EU에 이어 미국도 탄소국경세를 도입하려는 만큼 정부 차원의 통합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소주현 삼일PwC 세무자문 파트너는 최근 서울 용산구 삼일PwC 본사 사무실에서 서울경제신문 취재진과 만나 “탄소국경세 담당 부처와 기관이 현재는 환경부·산업통상자원부·한국철강협회로 산재돼 있어 기업 현장에서는 혼란이 가중되는 상황”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소 파트너는 “범국가적으로 탄소국경세를 통합 지휘하는 컨트롤타워가 지정된다면 관련 기업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소 파트너가 정부에 대책 마련을 촉구한 것은 탄소국경세 청구서가 사실상 국내 기업의 눈앞까지 다가왔기 때문이다. EU는 10월부터 수입품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 탄소 배출량을 규제하는 CBAM을 시행한다. 기업에 제품 생산 때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을 보고하게 하고 이 의무를 지키지 않으면 톤당 10~50유로(약 1만 4000~7만 원)의 벌금을 부과한다. 약 3년의 유예기간을 거친 뒤 2026년부터 본격적으로 세금을 매길 예정이다. 소 파트너는 LG전자에서 통상·관세·국제조세 등 업무를 담당하다가 2016년 삼일PwC에 합류한 인사다. 최근에는 한국수력원자력의 체코 원자력발전소 수출, SK하이닉스·LG화학의 탄소국경세 자문 업무 등을 맡았다.
소 파트너는 “탄소중립위원회가 따로 있고 기관도 흩어져 있다”며 “가령 산업부가 탄소국경세 관련 인증과 검증 기관을 확대한다는 발표를 해서 알아보면 인증·검증 실행 기관 지정은 환경부가 하고 EU 수출 관련 내용은 관세청에서 담당하는 식”이라고 비판했다.
소 파트너는 각 기관별로 대응할 인력·자금력이 없는 중소기업의 부담이 특히 크다고 꼬집었다. 소 파트너는 “수출 대기업 협력사들은 제품 생산 과정에서 탄소가 얼마나 배출됐는지 측정할 역량이 부족하다”며 “결국 컨설팅을 받아야 하는데 비용 부담에 고심이 많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부처와 기관이 벌여 놓은 산업은 많은데 실질적인 성과는 없다”며 “수출 중소기업의 탄소국경세 대응을 위한 바우처 지급 등 정부 차원의 지원 정책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소 파트너는 정부뿐 아니라 기업도 절세 전략을 하루 빨리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국내 기업 가운데 절세 전략을 마련한 곳은 현재 아무 데도 없다는 게 소 파트너의 설명이었다. 소 파트너는 “탄소국경세 부과가 확정된 만큼 기업은 절세 전략을 짜야 한다”며 “EU 수출 제품에 한해 친환경 원재료와 공법을 도입해야 한다. 비용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세금도 적게 내는 방안을 지금부터 실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소 파트너는 정부와 기업이 사전 대비를 하지 않으면 탄소국경세 부담은 점점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도 경고했다. 환경 보호를 명목으로 한 새로운 무역 장벽이 세계 곳곳으로 확산할 수 있다는 관측이었다. 그는 “EU의 탄소국경세 부과 대상이 현 철강·석유화학 업종에서 2030년 전자·자동차·소비재 등 전 업종으로 확대될 것으로 본다”며 “미국도 EU같은 탄소국경세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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