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034730)그룹 회장은 2016년 6월 확대경영회의에서 임직원들에게 처음으로 ‘딥체인지’를 제시했다. 섬유와 석유를 잊고 SK텔레콤만 바라보던 시절에서 벗어나 전혀 새로운 기업이 돼달라는 주문이었다. SK그룹은 2021년 1월 사업 포트폴리오 대전환을 알리는 4대 핵심 사업(그린에너지, 반도체·첨단소재, 디지털, 바이오)을 대외에 천명했다. 당시 그룹 내부에서는 이를 ‘최태원 시프트’로 부르기 시작했다. 이 변화는 그룹의 매출 구조를 내수에서 수출로 바꾸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지난해 말 SK그룹의 수출액은 83조 원을 넘기며 2020년 대비 75%나 증가했다. 한국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0%에 육박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29일 “과감한 변신과 막대한 투자에 대해 우려하는 눈길도 있었으나 기업의 명운을 가른 한 방으로 평가된다”며 “‘최태원 시프트’의 성과가 본격화할 날이 머지않았다”고 말했다.
‘최태원 시프트’ 2년 만에…韓 수출 10% 경제 기둥으로
최 회장이 4대 핵심 사업으로의 재편을 선언한 후 SK그룹의 매출은 2020년 139조 원에서 2022년 224조 원으로 1.6배 늘었다. 국내총생산(GDP)의 10%가 넘는다. 물론 안정적인 캐시카우 대신 사업성이 불투명한 신사업에 투자를 집중하면서 자금난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경기 침체 장기화 등 불안정한 대외 환경도 발목을 잡았다. 그래도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배터리 자회사 SK온의 투자 유치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내고 폐기물 재활용, 탄소포집·활용·저장(CCUS) 등 친환경 신사업에 대한 투자도 지속했다.
특히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위기 속에도 인수합병(M&A)과 대규모 투자에 나서는 등 승부수를 던져왔다. SK하이닉스(000660) 인수가 대표적이다. 2011년 인수전 당시 그룹 경영진은 매물로 나온 하이닉스 입찰을 포기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 하지만 최 회장은 “인수 가격은 중요하지 않고 인수 후의 기업가치가 중요하다”며 경영진을 설득했다. 입찰에 참여해 SK그룹의 품으로 들어온 하이닉스는 지난해 매출 44조 6500억 원을 올리고 영업이익 7조 원을 내면서 그룹의 핵심 계열사로 자리 잡았다.
"어려울때 더 키워야"…최태원의 과감한 베팅 결실
하이닉스 이후 과감한 베팅은 끊이지 않았다. 2015년 반도체 제조용 특수가스 회사인 OCI머티리얼즈(현 SK머티리얼즈)를 인수했고 2017년에는 웨이퍼 회사인 LG실트론(현 SK실트론)을 사들였다. 2019년에는 미국 듀폰 SiC웨이퍼사업부, 2020년에는 인텔의 낸드사업부를 10조 3000억 원에 인수했다. 다우케미칼 에틸렌아크릴산사업부와 세계 1위 동박 제조사인 KCFT(현 SK넥실리스)도 사들였다. 미국 의약품 생산 회사인 앰팩(AMPAC)도 SK그룹 계열사로 품었다.
M&A뿐만 아니라 투자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배터리는 SK온이 SK이노베이션(096770)의 사업 부문이던 시절부터 공격적인 투자로 공장을 차곡차곡 증설해나갔다. 그 결과 최근 미국 주간지 타임이 발표한 100대 기업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설립하는 등 미국 내 적극적인 투자 행보가 100대 기업 선정의 배경으로 꼽힌다.
사업회사뿐만 아니라 투자형 지주회사인 SK㈜도 4대 주요 성장 영역(첨단 소재, 그린, 바이오, 디지털)에 대한 투자를 통해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있다. 첨단 소재 분야는 투자 성과도 쏠쏠하다. 지난해 매출이 30% 가까이 증가하며 4조 원대로 껑충 뛰었다. 그린 사업에도 2조 원가량을 투자하며 미래 사업 선점에 적극 나서고 있다. 증권가에 따르면 SK㈜의 자체 사업 가치는 8조 5000억 원에 달한다.
2026년까지 247조 베팅…회색 지우고 그린으로
최 회장은 앞으로 투자를 더 키우겠다고 공언했다. SK그룹은 2026년까지 국내와 해외에 총 247조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특히 국내 투자 179조 원 중 73조 원은 올해와 내년에 모두 집행하기로 했다. 내년까지 집행될 국내 투자는 △반도체·소재 48조 7000억 원 △그린(친환경) 12조 8000억 원 △디지털 9조 8000억 원 △바이오·기타 2조 2000억 원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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