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우주망원경인 허블망원경은 인류가 우주를 보는 시야를 넓혀줬습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이 주축이 된 허블망원경 제작에는 록히드마틴, 마샬우주비행센터, 존슨우주센터, 케네디우주센터, 유럽우주국(ESA), 우주망원경과학연구원 등이 참여했습니다.
지상의 천체망원경은 아무리 성능이 좋아도 대기와 날씨, 빛, 미세입자 등의 영향을 받습니다. 반면 우주망원경은 지상의 관측 한계를 넘어 별(항성)과 성운, 은하 등은 물론 심우주의 모습까지 보여줍니다.
1990년 4월 24일 쏘아 올려진 허블망원경은 지구 상공 547km에서 96분 간격으로 지구를 한 번씩 돌고 있습니다. 당시 인류의 모든 광학기술이 집약된 이 망원경은 제임스웹망원경 등장 이전에는 최고의 우주망원경이었습니다.
허블망원경의 길이는 버스 1대 정도의 크기인 13m, 렌즈구경은 2.4m에 달하며, 현재까지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망원경의 이름 ‘허블’은 미국의 천문학자 ‘에드윈 파월 허블’에서 따왔습니다.
나사의 대형 프로젝트였던 허블우주망원경은 발사 당시 천문학자들의 큰 기대를 모았지만 자칫 실패작으로 끝날 뻔한 아찔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허블망원경은 궤도에 올려진지 3주 후 쯤 100만개 이상의 빛을 포착했습니다. 그리고 허블망원경은 사진을 지구로 전송했습니다. 그런데 허블망원경이 찍은 사진들은 온통 흐릿했습니다. 우주에서 보내온 사진들이 초점이 맞지 않아 지상의 망원경이 찍은 사진보다 더 화질이 안 좋았습니다. 문제는 광학장치에 있었습니다.
허블망원경이 기대 이하의 성능을 보이자 미국 의회와 언론은 “나사가 헛짓거리를 했다”며 비난을 쏟아냈습니다.
이에 나사는 허블망원경을 수리하기로 했습니다. 망원경을 다시 지구로 가져올 수는 없으니 우주로 직접 나가 문제가 된 광학장치를 손보기로 했습니다.
허블망원경이 발사된 3년 반 만인 1993년 12월 2일 수리를 위해 인데버호가 우주로 떠났습니다. 우주공간에서의 수리작업은 쉽지 않지만 엔지니어들은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습니다.
그리고 1993년 12월 18일 허블망원경에서 다시 사진들이 지구로 전송됐습니다. 새로운 이미지를 받아본 지상의 연구원들은 환호했습니다. 재탄생한 허블망원경이 보낸 이미지는 기대 이상으로 선명했습니다. 지금까지 어떤 천체망원경도 보여 주지 못한 우주의 모습이 선명히 담겨 있었습니다. 이때부터 우주관측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허블망원경은 첫 수리 이후 1997년 2월, 1999년 12월, 2002년 3월, 2009년 5월 등 네 차례에 걸쳐 성능 개선(업그레이드) 작업을 했습니다.
100억광년 이상을 내다 볼 수 있는 허블망원경이 이뤄낸 우주과학의 성과는 엄청납니다.
우선 이론상으로만 존재했던 블랙홀의 관측은 허블망원경의 대표적 업적입니다. 1992년 허블망원경은 거대 블랙홀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은하 M87의 중심부를 관측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M87에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가스 원반이 초속 750㎞의 속도로 회전하고 있었습니다. 그 중심에는 태양의 20억~30억 배에 이르는 큰 질량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허블망원경이 확인했습니다. 바로 블랙홀의 발견입니다. 1998년에는 이곳에서 거대한 제트가 분출되는 것도 관측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137억년이라는 우주의 나이도 허블망원경이 밝혀냈습니다. 이 망원경이 우주의 팽창속도를 나타내는 허블 상수 측정값의 오차를 기존 50%에서 ±10%로 줄였기 때문입니다. 허블망원경이 우주로 올라가기 전 과학자들은 우주나이를 막연히 100억~200억년으로 추정했습니다.
일명 ‘허블 딥필드(Hubble Deep Field)’라고 불리는 우주공간 촬영도 빼 놓을 수 없는 위대한 업적입니다.
1995년 12월 허블망원경은 별도 은하도 없는 듯 보이는 북두칠성 부근의 검은 하늘에 초점을 맞춰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10일 후 얻은 이미지는 천문학자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막연히 텅빈 공간이라고 생각했던 그곳에는 70억년 전의 밝은 은하부터 120억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희미한 점까지, 보름달 지름의 30분의 1도 안 되는 좁은 하늘에서 적어도 2000여개의 은하를 촬영했습니다.
또 2003년 9월~2004년 1월까지 촬영해 얻은 ‘허블 울트라 딥 필드’ 이미지에는 약 130억년 전 우주 탄생 후 얼마 되지 않은 뒤 태어난 약 1만개의 은하들이 포착됐습니다.
이처럼 허블망원경은 지난 30여년 동안 여러 업적을 세우며 우주과학의 커다란 진보를 가져왔습니다. 현재는 허블망원경보다 더 성능이 좋은 제임스웹망원경이 인류의 우주과학을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나사는 오는 2026년에는 ‘낸시 그레이스 로먼 우주망원경’을 우주로 보낼 예정입니다. 그리고 허블망원경은 이때부터 서서히 임무를 종료할 준비에 들어가 2028~2040년 사이 지구 대기권으로 재진입해 퇴역할 예정입니다.
나사는 민간 우주기업 스페이스-엑스(X)와 허블망원경의 임무연장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제임스웹망원경이 있으니 이제 허블망원경을 퇴역 시키는 게 좋다는 의견을 내고 있어 허블망원경은 역사 속으로 사라질 가능성이 큽니다. 만약 수명을 연장해도 활동 기간이 그리 오래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지난 30여년 간 인류가 바라보는 우주의 크기를 확장해준 허블망원경은 이르면 10년 이내에 수명을 다하겠지만 그 동안 우리에게 보낸 자료들은 계속 남아 우주의 비밀을 풀어가는 데 기여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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