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내 링크는 서울경제신문 홈페이지에서 이용할 수 있습니다.
아직 멀쩡한 폰을 놔두고 새 폰을 산 적 있으십니까. 에디터들은 완충을 해도 오후쯤이면 간당간당해지는 배터리 때문에 새 폰을 산 기억이 있습니다. 한 2년쯤 쓰고 나면 배터리부터 노쇠해지곤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아이폰 배터리를 직접 교체해 보는 워크숍이 열린다기에 당장 달려갔습니다. 불굴의 알짜님들(알맹상점을 포함한 수많은 활동들을 하고 계신 그 분들)이 결성한 '수리수리다수리'팀에서 김학민 서강잡스 대표님을 초빙해 연 워크숍입니다. 아이폰 정품 배터리와 공구 대여료와 음료를 포함해 참가비는 4만원. 여기에 박정음 서울환경연합 자원순환팀장님의 수리할 권리 강연까지. 여러모로 실용적이면서도 많이 배울 수 있었던 행사였습니다.
나...떨고 있니?
공구를 받아든 10명의 참가자 분들은 긴장한 기색이셨습니다. 김학민 대표님이 "전문가들도 실수할 때가 있지만 너무 겁먹지 마시라, 혹시 하다가 고장나면 제가 있으니까 걱정 마시라"고 하자 안도의 박수가 터져나왔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워크숍, 첫번째 순서는 폰 데우기(1번 사진)입니다. 히팅기의 뜨거운 발열판 위에 폰을 올려두고 앞뒤로 노릇노릇하게 굽습니다. 앗 뜨거! 싶을 정도로 데워야 기기 내부의 접착제가 녹아서 분리하기 쉬워지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데운 폰의 하부 스피커 옆에 달린 아주 조그마한 나사를 아주 가느다란 드라이버로 빼냅니다(2번 사진). 몇몇 참가자들의 바들바들 떨리는 손을 보며 에디터도 겨드랑이에 땀이 찼습니다. 한 참가자 분은 "숨을 못 쉬겠어요 선생님"이라고 부르짖었고 취재하는 에디터조차도 같은 심정이었습니다.
그 다음 순서는 특히 무서웠는데, '헤라'라는 끝이 납작한 공구를 액정과 뒷판 사이에 끼워넣은 다음 조금씩 틈을 벌려서 분리합니다(3번 사진). 잘못하면 액정에 금이 가거나, 내부 부품을 건드릴 수 있어서 정말 섬세한 손길이 필요했습니다. '찌이익'하고 접착제 뜯어지는 소리와 함께 분리에 성공하는 분이 나올 때마다 모두가 박수를 쳐 주셨습니다. 먼저 성공한 분들은 다른 분들을 도와주기도 하셨고요.
다음으로는 내부의 더 작은 나사(길이 0.2밀리 정도. 4번 사진 빨간 동그라미가 나사들)를 차례차례 빼내고 케이블을 분리하고 전원을 차단한 후 배터리를 들어내는 작업이 이어졌습니다. 김학민 대표님 말마따나 "살해 위협을 느낄 정도로 폰이 뜨거운 상태"지만 장갑을 끼면 손끝의 감각이 떨어져서 맨 손으로 해야 하는, 역시 어려운 작업이었습니다. 놀랍게도 참가자 분들 모두가 금손이신지, 이 고비를 잘 넘기셨습니다.
다시 전원이 켜지는 순간, 모두의 환호성
배터리의 빈 자리에 새 정품 배터리를 끼워놓고, 이제 앞에서 했던 작업을 역순으로 반복할 차례. 그렇게 참가자 분들의 폰은 하나씩 하나씩 다시 전원이 켜졌고 환호성 속에서 모두가 배터리 교체에 성공하셨습니다. 이렇게 적고 보니 간단해 보이지만 실제로 배운 건 오늘 기사의 10배쯤 될 겁니다. 정말 한 편의 스릴러 영화처럼 긴장을 늦출 수 없는 2시간이었습니다.
워크숍이 끝날 때쯤, 참가자 분들의 얼굴엔 확연한 자신감이 어려 있었습니다. "6년 쓴 폰인데 앞으로 6년 더 쓸 수 있겠다", "이런 걸 내가 할 수 있구나 흥분되고 효능감을 느꼈다" "딸에게 아이폰을 선물할 수 있게 됐다" "앞으로 고장이 나더라도 도전해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소감을 들으며 덩달아 뿌듯해졌습니다.
2차 워크숍(아쉽게도 이미 접수 마감)부터는 수리수리다수리 팀에서 아예 영상도 찍어서 누구든 유튜브만 보고 따라할 수 있도록 도울 계획이라고 합니다. 공구 대여는 물론이고요. 액정 수리 워크숍, 우산 수리 워크숍 등등 범위도 넓혀나가서 '수리 네트워크'를 만들 거라는 수리수리 다수리팀의 설명이 믿음직했습니다. 앞으로의 워크숍 공지는 알맹상점 또는 알짜 인스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런 루트 말고 애플이든 삼성이든 폰을 자가수리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합니다. 삼성전자는 홈페이지에서 갤럭시S20~22와 갤럭시북 등의 자가수리 매뉴얼과 부품 키트(유료)를 제공하고 있고 당연 국내에서도 이용 가능. 하지만 액정과 후면 커버, 충전 포트 정도만 부품이 제공되고 아직까진 겁내는 분들이 더 많은 분위기입니다. 애플은 미국, 유럽에선 일부 아이폰과 맥북 제품에 대해 자가수리 서비스를 시작했지만 공식 서비스센터 가서 수리받는 것 대비 별로 저렴한 비용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리고 자가수리를 택할 경우 안전 등 다양한 가능성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스마트폰의 리튬이온 배터리는 잘못 만지면 화재나 폭발을 일으킬 수 있고(물론 워크숍에서는 김학민 대표님이 충분히 주의를 주셨지만, 혹시나 혼자 자가수리에 도전한다면 이런 도움을 받기가 어려우니까요), 가짜 부품에 속거나 아예 수리에 실패할 수도 있을 겁니다. 시계, 신발, 배터리, 프린터까지 다양한 물건을 수리한 경험을 <아끼는 날들의 기쁨과 슬픔>이란 책으로 펴낸(지구용 리뷰 다시 읽기) 이건해 작가님은 “숙달되지 않은 개인이 스마트 기기의 배터리를 교체하기엔 시기상조라고 생각한다”면서 “개인이 큰 걱정 없이 수리를 하려면 법이 개정되어 제조사가 구조를 변경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짚어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사설 수리도 공식적으로 인정되고 수리비도 낮아지는 방향으로 변하지 않겠느냐"고 덧붙이셨고요.
이런 상황에서 수리해 쓸 수 있는 권리가 왜 꼭 필요한지는 다음 기사에서 풀어보려고 합니다. '수리권'이라는 게 생각보다 넓은 개념이란 사실, 그동안 소비자들이 호구(...)였단 사실을 깨닫게 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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