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세수 결손이 기정사실화된 가운데 예산 당국이 각 부처에 내년 예산을 다시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윤석열 정부가 내년에도 ‘건전재정’ 기조를 이어가겠다고 공언한 상황에서 지출 구조 조정 강화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세정 당국도 체납 국세의 소멸 시효를 연장해 세수 확충에 힘을 보탤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불필요한 지출을 줄여 혈세 낭비를 막고 부족한 세수를 메꾸기 위해 전방위로 나서는 모습이다.
2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최근 기재부는 각 부처의 예산을 담당하는 기획조정실장들을 소집해 3일까지 내년 예산을 다시 제출하라는 지침을 전달했다. 통상적으로 매년 5월 말까지 부처마다 정부 사업에 대한 다음 해 예산을 기재부에 제출하고 기재부는 이를 기초로 정기국회가 열리는 9월 전에 정부 예산안을 확정한다. 즉 이미 5월 말에 제출한 각 부처 예산안을 기재부가 3일까지 다시 제출하라고 한 것은 정부 살림살이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는 얘기다.
이 같은 조치는 지난달 28일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국가재정전략회에서 예고된 바 있다. 윤 대통령은 “선거에서 지더라도 나라를 위해 건전재정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발언뿐 아니라 세수 감소를 고려할 때 지출 구조 조정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기업 실적 둔화로 올해는 물론 내년 법인 세수까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부동산 등 자산 시장 침체의 여파로 소득세 수입도 불투명하다. 올해 1∼5월 세수는 160조 2000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6조 4000억 원 줄었다.
세수 부족과 건전재정 방침으로 정부의 총지출 증가율이 7~8년 만에 3~4%대로 크게 낮아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만 기재부는 정책 목표 설정이 불투명하고 효과 성과의 타당성이 미흡한 예산 사업을 과감히 구조 조정하는 것일 뿐 총지출 증가율의 구체적인 규모는 정해지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윤 대통령이 국방과 법 집행 등 국가의 본질적 기능 강화, 약자 보호, 미래 성장 동력 확충과 양질의 일자리 창출 등 4대 분야를 중심으로 내년 예산을 재구조화하라고 강조한 만큼 오히려 약자 복지 예산에는 과감한 투자가 예상된다는 것이다.
그런 만큼 정부는 체납 세금을 확실하게 걷고 재정 집행의 효율성을 제고하는 데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지난 3년간 국세징수권 시효 만료로 사라진 체납 세금은 6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세청으로부터 받은 징수권 시효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국세징수권 시효가 만료된 체납 세금은 1조 9263억 원이었다. 앞서 소멸시효로 사라진 국세는 2020년 1조 3411억 원, 2021년 2조 8079억 원에 달했다. 이런 까닭에 체납 국세의 소멸시효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국회는 현재 10년(5억 원 이상)인 시효를 최대 20년까지 연장하는 것을 골자로 한 국세기본법 개정안 발의에 착수했다.
정부는 비효율적인 국고보조금 사업의 삭감·폐지 절차에 들어간다. 국회나 감사원으로부터 지적을 받는 사업도 대상에 포함할 예정이다. 국비 중심의 균형발전 재정투자 방식은 지자체와 민간이 주도하는 방식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기로 했다. 지역활성화투자펀드처럼 민간의 역량과 자본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바꿔가는 것이다. 이정환 한양대 교수는 “세출을 적정 규모로 줄이고 필요 없는 사업도 걸러내 재정을 효율적으로 운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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