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키 파울러(35·미국)는 올해 초 퍼터를 바꿨다. 올 시즌부터 함께한 새 캐디 리키 로마노의 9년 전 구형 퍼터로 장난삼아 연습했는데 퍼트감이 썩 좋았다. 그런데 이 퍼터가 파울러에게는 요술 지팡이가 됐다. 굳게 닫혀있던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우승의 문을 4년5개월 만에 활짝 열어젖혔기 때문이다.
파울러는 3일(한국 시간)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GC(파72)에서 열린 PGA 투어 로켓 모기지 클래식(총상금 880만 달러) 4라운드에서 보기 없이 버디만 4개를 잡아 4언더파 68타를 쳤다. 최종 합계 24언더파 264타로 애덤 해드윈(캐나다), 콜린 모리카와(미국)와 동타를 이룬 그는 1차 연장에서 버디를 낚아 우승 상금 158만 4000달러(약 20억 8000만 원)의 주인공이 됐다.
2010년 신인왕 출신인 파울러는 PGA 투어를 대표하는 인기 선수다. 주황색 모자와 의상을 자주 입어 ‘오렌지 보이’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그런데 지난해까지 파울러의 성적은 인기에 걸맞지 않은 모습이었다. 2019년 2월 피닉스 오픈에서 통산 5승째를 차지한 이후 4년 넘게 우승이 없었고 4위까지 올랐던 세계 랭킹은 지난해 185위까지 밀려났다.
원래 파울러는 퍼트 능력 지수인 ‘퍼트로 얻은 타수’ 부문에서 2017년 1위에 오를 만큼 퍼트에 강했다. 그런데 2020~2021시즌 이 부문 126위, 지난 시즌 161위까지 곤두박질치면서 성적도 떨어졌다. 그런 그가 올 시즌에는 이 부문 30위로 뛰어올랐다. 골프위크 등 현지 매체는 “블레이드형 퍼터를 써온 파울러가 올해 초부터 2014년 출시 모델인 말렛형 오디세이 버사 제일버드 퍼터를 사용하면서 큰 효과를 봤다”고 했다. 이번 대회에서도 퍼트로 얻은 타수가 무려 4.528타다.
1타 차 선두로 출발한 파울러는 이날만 각각 8타, 5타를 줄인 모리카와, 해드윈에게 동타를 허용해 연장으로 끌려갔다. 18번 홀(파4)에서 진행된 연장 첫 홀에서 파울러는 티샷을 오른쪽 러프로 보내 불리한 상황에 몰렸으나 두 번째 샷을 핀 3.5m에 붙여 버디를 잡았다. 1610일 만의 우승.
긴 ‘우승 가뭄’ 기간 동안 파울러는 장대높이뛰기 선수로 유명한 미국의 앨리슨 스토키와 2019년 결혼해 2021년 11월 딸 마야까지 얻었다. 마야를 품에 안고 인터뷰에 나선 파울러는 “나는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우승도 많이 해 내 능력을 믿고 있었지만 성적이 안 나오는 시기를 겪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면서 “결국 이렇게 우승해서 기쁘다”고 했다. 이번 우승으로 파울러의 세계 랭킹은 지난주(35위)보다 12계단 오른 23위가 됐다. 그는 2011년 한국 오픈에서 프로 데뷔 첫 승을 올려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월요 예선을 거쳐 나온 세계 랭킹 789위 피터 퀘스트(미국)가 테일러 무어(미국) 등과 공동 4위(21언더파)에 올라 처음으로 톱 10에 입상했다. 한국 선수 중에는 임성재가 공동 24위(14언더파)로 가장 좋은 성적을 냈고 노승열은 공동 70위(6언더파)로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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