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7일 서울 여의도가 온통 보라색으로 물들었다. 방탄소년단(BTS) 데뷔 10주년 행사를 보기 위해 세계 각국의 BTS 팬클럽 ‘아미’ 40만 명이 모였기 때문이다. 이날 동원된 경호·경찰·청소 인력만도 수천 명이다. 그런데 축제가 끝난 뒤에도 안전사고나 쓰레기 대란은 없었다고 한다. BTS의 선한 영향력이 아미들의 빛나는 시민 의식으로 이어진 덕분일까.
행동경제학에는 선한 영향력과 비슷한 개념이 있다. ‘넛지(nudge) 이론’이다. 넛지는 원래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 주위를 환기시키다’라는 뜻인데 강압하지 않는 부드러운 개입으로 사람들이 더 똑똑한 선택을 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넛지 이론은 정부 정책에도 필요하다. 수혜자들의 삶이 나아지고 편리해질 것이라는 인식부터 심어줘야 호응을 끌어낼 수 있다. 특히 기업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이 강조되는데 그 속도가 지지부진하다면 정부가 기업의 행동 변화를 유도하는 긍정적 동기 부여를 해줘야 한다.
이러한 정책적 노력 중 하나가 녹색 인증이다.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오염 물질 배출을 줄이는 기술에 인증을 부여하는 제도로 기업의 ESG 추구 노력의 결과를 보여주는 지표다. 녹색 인증을 받으면 정책 자금 대출 우대, 특허 우선 심사 등의 혜택이 있다.
신제품이나 서비스를 출시할 때 일정 기간 기존 규제를 면제 또는 유예해주는 규제 샌드박스 제도는 친환경 사업을 가로막는 규제를 정비해준다. 실제로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이 접수해 승인받은 산업 융합 규제 특례 중에는 수소 충전, 자원 순환 등 탄소 중립과 관련된 과제가 40% 정도인데 ESG에 대한 기업의 높은 관심을 확인할 수 있다.
기업의 ESG 경영 이행은 이제 투자의 기준, 소비자 선택의 기준이다. 국제회계기준(IFRS)은 2025년부터 ESG 공시 의무화를 추진하고 유럽연합(EU)은 2026년부터 탄소국경세를 도입한다. 한국 기업들도 직간접적 영향이 불가피할 것이다.
ESG 경영 도입을 미루고 싶은 기업의 입장도 물론 이해된다. 환경 변화는 빠른데 정작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실질적인 정보는 별로 없고 또 친환경 시설 구축에 필요한 투자나 전문인력 채용도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ESG 정책은 불이행에 대한 처벌이나 불이익보다는 혜택과 인센티브 위주로 추진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ESG 경영이 억지로 가야만 하는 고통스러운 길이 아니라 합리적 선택지로 인식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SG 경영 확산에는 정부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정부가 선한 영향력으로 기업의 ESG 경영을 이끌고 국가 전체의 ESG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도록 고민하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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