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권위의 자동차 전문지 모터트렌드가 올해 초 정의선(사진)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을 ‘2023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1949년 창간된 모터트렌드는 에티터와 자문위원들의 엄격한 평가와 비공개 투표를 거쳐 매년 글로벌 자동차 업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인을 가려낸다. 모터트렌드는 선정 이유에 대해 “현대차(005380)그룹을 새로운 시대로 이끌며 자동차 업체 최고경영자(CEO) 이상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며 “정 회장과 그의 비전, 위대한 기업이 되고 있는 현대차그룹이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고 밝혔다.
외신의 평가처럼 정 회장이 이끄는 현대차그룹은 확 달라진 존재감으로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지난해 전 세계에서 684만 5000대를 팔아 1967년 창사 이래 최초로 글로벌 판매량 3위에 오른 현대차·기아(000270)는 올 들어서도 순항하고 있다. 올 상반기 기준 현대차·기아의 누적 판매량은 365만 7382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8% 증가했다. 특히 기아는 157만 5920대로 역대 상반기 최대 판매를 기록했다.
경영 실적도 쾌속 질주하고 있다. 2020년 4조 7000억 원에 머물렀던 현대차·기아의 합산 영업이익은 지난해 17조 원까지 늘었다. 증권가에서는 올해 두 회사의 합산 영업이익이 24조 원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정 회장 취임 이후 3년 새 영업이익이 무려 5배가량 뛴 것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정 회장 취임 이후 3년의 변화는 56년 그룹사에서도 가장 혁신적인 변화로 꼽힐 것”이라며 “매년 역대 최고 실적을 경신하면서 그룹의 체질을 내연기관에서 전기차·도심항공모빌리티(UAM), 로봇 등 미래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 바꿔나가는 것이 놀랍다”고 말했다.
글로벌 판매 순위 꾸준히 상승…“3년뒤 1위 가능”
“현대차그룹이 2026년 920만 대를 판매하며 세계 1위 완성차 제조사에 등극한다.”
최근 삼성증권이 내놓은 전망이다. 글로벌 판매 3위 제조사인 현대차그룹이 3년 뒤면 도요타와 폭스바겐을 제치고 1위 자리를 꿰찰 것이라는 얘기다.
허무맹랑한 얘기로 보기는 어렵다. 현대차그룹의 글로벌 판매 순위는 지난 20여 년간 꾸준히 상승해왔기 때문이다. 2000년 10위로 시작했던 현대차그룹은 계속해서 순위가 오르다 2010년 미국 포드를 제치고 처음으로 ‘톱5’에 진입했다. 이어 지난해에는 684만 대를 판매하며 3위에 안착했다. 반도체 수급난으로 다른 ‘톱5’ 완성차 그룹이 모두 판매 감소를 겪는 와중에도 현대차그룹은 플러스 성장을 이뤘다.
‘싸구려’는 옛말…품질 경영으로 이미지 변신
업계에서는 현대차그룹이 글로벌 톱티어(업계 최고) 제조사로 거듭나기 위해 축적해온 자산이 하나둘씩 빛을 발하며 그룹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그룹의 이미지를 바꿔놓은 품질 경영이 대표적이다. 1985년 소형 세단 엑셀을 앞세워 미국에 진출할 당시만 해도 현대차의 광고 문구는 ‘자동차 1대 가격이면 엑셀 2대를 살 수 있다’였다. 저렴한 가격을 판매 전략으로 내세운 것이다. 하지만 잦은 고장 탓에 ‘싸구려 자동차’라는 오명을 얻자 현대차는 1999년 ‘10년, 10만 마일 보증’이라는 파격적인 서비스로 승부수를 던졌다.
변화는 점차 나타났다. 현대차그룹은 2004년 미국 시장조사 기관 JD파워의 초기품질조사(IQS)에서 뉴 EF쏘나타로 중형차 부문 1위를 처음 차지한 것을 시작으로 글로벌 품질 평가 기관으로부터 호평을 받기 시작했다. 올해 JD파워의 내구품질조사(VDS)에서는 고급 브랜드를 포함한 전체 31개 브랜드 가운데 제네시스 2위, 기아 3위, 현대차가 8위를 차지해 모두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며 글로벌 16개 자동차 그룹사 중 가장 우수한 종합 성적을 거뒀다.
제네시스로 고급차 시장 공략…100만대 판매 ‘눈앞’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의 출범은 그룹의 수준을 한 단계 올려놓았다. 현대차그룹은 2015년 11월 국산차 중 첫 고급 브랜드로 G90(EQ 900)을 출시하며 프리미엄 자동차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당시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이 초기 기획 단계부터 외부 인사 영입과 조직 개편까지 브랜드 출범 전 과정을 주도했다.
고급화 전략은 적중했다. 국내는 물론이고 북미에서도 품질과 디자인 경쟁력을 인정받으며 제네시스는 고급차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지난해 제네시스는 미국에서만 5만 6410대가 팔리며 일본 닛산의 고급 브랜드 인피니티(4만 6619대)를 제치고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 올해 3분기에는 제네시스의 글로벌 누적 판매량이 100만 대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제품 가격이 비싼 만큼 제네시스의 흥행은 현대차그룹의 수익성 개선에도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다.
글로벌 870만대 생산체제 구축…전략車로 현지화
글로벌 생산 체계를 갖추고 각 지역에 맞는 전략형 상품을 개발한 점 역시 현대차그룹의 성공을 뒷받침한 요인이다. 현지 수요에 따라 물량을 신속히 공급하며 생산 단가까지 낮추는 효과를 거둬서다. 현재 현대차그룹이 보유한 생산 네트워크는 아시아·유럽·북미·남미 등에 뻗어 있으며 국내외 공장의 총생산능력은 870만 대에 달한다. 현대차그룹은 여기에 연산 16만 대 규모의 인도 제너럴모터스(GM) 탈레가온 공장 인수를 추진 중이며 미국에는 매년 전기차 30만 대를 생산할 수 있는 전용 공장도 건설하고 있다.
각 생산 거점에서 현지 소비자의 특성을 반영해 개발한 전략 차종은 현대차그룹의 판매 실적을 견인하는 동시에 브랜드 영향력 강화에도 기여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현대차가 인도에서 생산하는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크레타는 2015년 출시 이후 지금까지 70만 대 넘게 팔리며 현지 국민차 반열에 올랐다. 더운 날씨를 고려해 뒷좌석 에어컨을 기본 사양으로 적용하고 대가족이 많은 특성을 반영해 실내 공간을 넓히는 등 제품을 현지화한 결과다.
2분기 합산 영업이익 6.6조 전망
현대차그룹은 외형적 성장뿐 아니라 수익성 확보에도 성공하며 내실을 다져나가고 있다. 특히 올해 1분기 도요타와 GM보다 더 많은 영업이익을 거둔 현대차·기아는 2분기에도 실적 고공 행진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현대차·기아는 올 1~3월에 6조 4600억 원의 누적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도요타(약 5조 원), GM(약 3조 원)의 실적을 제친 바 있다.
증권가 평균 전망치(컨센서스)에 따르면 현대차는 2분기에도 전년 대비 21% 증가한 3조 6089억 원의 영업익을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기아의 영업익 역시 33% 늘어난 2조 9801억 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양 사의 2분기 합산 영업이익은 6조 6000억 원에 육박할 것으로 관측된다. 실적이 추정치에 부합하면 양 사는 각각 국내 상장사 영업이익 1·2위 기업에 오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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