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지역의 한 공공기관에서 근무하는 심수현(가명) 씨는 최근 직장을 옮길지 고민하고 있다. 그가 일하는 공공기관이 충청이나 호남 지역으로 이전할 것이라는 소문이 계속 돌고 있는 탓이다. 심 씨는 “직장이 지방으로 내려가면 거주나 자녀 교육은 어떻게 해야 할지 동료 직원들 사이에서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정부가 올 상반기로 예정했던 ‘제2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 기본계획’ 수립 일정을 내년 총선 이후로 미뤘지만 지방자치단체의 공공기관 유치 경쟁은 총력전을 방불케 한다. 지자체장이 직접 기관을 찾는 일도 흔하다. 특히 총선을 앞두고 지역 표심과 연계해 중구난방으로 공공기관 이전이 추진될 경우 부작용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6일 정부 등에 따르면 김태흠(사진) 충남도지사는 11일 인천 서구 한국환경공단을 방문할 예정이다. 김 지사는 안병옥 환경공단 이사장을 만나 공단 본사의 충남 홍성군 내포신도시 이전을 설득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환경공단은 3000명이 넘는 임직원을 보유한 대형 공공기관으로, 4곳 이상의 지자체가 유치를 희망하고 있다.
충남도청은 혁신도시로 지정된 내포신도시에 환경공단뿐만 아니라 한국환경산업기술원·KOTRA 등 수도권 소재 공공기관 30여 곳의 유치를 꾀하고 있다. 김 지사는 지난해에도 국민체육진흥공단을 찾아 내포신도시 이전을 제안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다른 지자체 역시 공공기관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충북도청은 올 초 한국지역난방공사·한국공항공사 등 32곳을 중점 유치 대상으로 발표했고, 경북도청도 김천혁신도시에 한국산업기술진흥원·한국원자력안전재단 등 30여 곳을 입주시키겠다고 밝혔다. 전북도청은 3월 한국투자공사·농협중앙회·한국마사회 등을 유치하기 위해 ‘공공기관 유치추진단’을 발족했다.
공공기관 유치전의 판이 깔린 것은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당시 수도권 내 공공기관을 추가로 지방으로 옮기겠다고 공약하면서다. 이른바 제2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이다. 그 이전에는 2005년부터 2019년까지 ‘제1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이 추진돼 총 153개 공공기관이 비수도권으로 옮겼다.
이에 국토교통부는 6월까지 제2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 기본계획을 짜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각 지자체장과 지역구 정치인 사이에서 공공기관 유치 경쟁이 과열되면서 정부는 기본계획 수립 일정을 내년 총선 이후로 연기했다. 우동기 국가균형발전위원장은 5일 기자들과 만나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공공기관 이전 사업이 진행될 경우 자칫 사업이 지역구 표심을 얻기 위한 도구로 악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공공기관을 유치하려는 지자체들의 ‘물밑 영업’은 여전하다. 이러다 보니 수도권에 자리한 공공기관이나 공기업은 그야말로 좌불안석이다.
특히 지자체들이 공공기관의 특징을 고려하지 않고 일단 유치부터 하려고 나서면서 비판이 만만찮다.
가령 전북도에서는 전주에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가 있다는 점을 들어 한국투자공사와 7개 공제회를 유치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금융투자 업계에서는 “기금운용본부가 전주로 이전한 뒤 운용역 퇴사가 늘었다”며 “공제회와 한국투자공사 이전의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꼬집는다.
복수의 지자체가 유치를 희망하고 있는 환경공단·환경산업기술원의 이전 역시 논란거리다. 환경 부문 공공기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인천 서구 종합환경연구단지에는 이미 환경공단과 환경산업기술원을 비롯해 국립환경과학원 등 다양한 환경 전문 기관이 들어서 있다”며 “환경공단 등이 지방으로 내려갈 경우 환경 연구 기관 간 클러스터 효과가 약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환경공단의 경우 서울에서 인천으로 이전한 지 이제 막 20년이 넘어 다시 지방으로 옮겨야 한다는 점에 대한 내부 불만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다른 관계자는 “지방 이전을 이유로 이미 집적화가 잘 돼 있는 곳까지 마구 헤집는다면 과연 누구를 위한 이전인지 자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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