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은 절대 사주지 마세요.”
초등학생 이하의 어린 아이를 양육하는 부모들이 모여 있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조언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아이들은 벽과 바닥, 혹은 공기처럼 숨 쉬듯 스마트기기를 접한다.
학교 교실에서는 이미 태블릿PC로 수업을 하고 교과서에서는 배운 내용을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해보라’는 과제가 주어진다. 아이는 학교에서 코딩을 배우지만 부모는 오로지 종이로 된 콘텐츠만 제공하고 싶어 한다. 부모들은 시종일관 자녀가 스마트 기기와 가까워질까 노심초사하지만 성인이 되어서는 IT 분야에서 직업을 갖길 원한다.
‘디지털 세대의 아날로그 양육자들’은 이처럼 디지털 이주민으로 자란 부모가 디지털 원주민인 아이들을 길러내는 과정에서 겪는 고민과 현실적 대안을 집중적으로 분석하는 보고서다. 저자인 소니아 리빙스턴과 얼리샤 블럼-로스는 각각 교수와 교육자로서 어린이가 온라인에서 안전하게 소통하고 학습할 수 있도록 하는 연구와 활동을 수행한다. 우선 저자들은 2015~2016년에 걸쳐 런던의 73가정과 2000명의 부모를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그 결과 런던이라는 한 도시에 거주하는 다양한 인종, 계층이 처한 사회경제적 환경에서 양육자의 어려움이 세세하게 드러난다. 특히 여기에는 특수 교육을 받아야 하는 아이를 돌봐야 하는 양육자의 어려움도 포함된다.
한국에서도 그렇지만 런던에서도 많은 사회 스펙트럼의 가족들이 집중양육(적극적으로 아이들의 재능, 의견, 기술을 길러주고 비용을 대는 교육 방식)에 투자하고 있다. 부모들은 아이를 위해 상상한 미래를 실현하려 애쓴다. 여기에는 디지털을 수용하는 방식이 포함된다.
저자들은 ‘디지털 육아’의 유형을 수용, 균형, 저항 등 세 가지로 구분한다. 부모들은 하루 동안 디지털 육아의 세 가지 유형을 옮겨다니며 고군분투한다. 디지털 육아의 유형 중 한 가지를 결정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한 역사적 사례가 없기 때문이다. 이 거대한 사회적 변화 속에서 결정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부모에게만 있다. 저자들은 자녀의 ‘스크린 타임’을 감시하도록 지시하는 문제투성이 공공정책과, 디지털 기술에 대한 자녀의 관심을 존중해 더 ‘민주적인’ 방식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부모의 노력을 대조해 보여준다.
아날로그로 살아온 부모들도 디지털에 무지하지 않다. 하다못해 60세 이상의 노인들마저도 자유롭게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가. 지금 디지털 세계로 이민 온 아날로그 부모들은 새로운 육아 방식을 찾아 나서는데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미래 세대를 위해 수용, 균형, 저항 중 무엇으로 대응할지 알아서 결정해야 하고, 그 책임은 고되다. 주된 양육자인 부모 외에는 책임을 지는 이가 없는 현실은 분명 문제적이다. 부모들은 스스로 이해하기 어려운 디지털 광풍 한가운데에서 양육자 선배, 기관, 정부의 도움 하나 없이 고립되어 있는 어려움을 호소한다.
런던이라는 지구 반대편 도시에서 벌어진 일이지만 저자의 문제제기는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정부는 2025년부터 초등학교 교실에서 종이 교과서를 없애고 전면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영어, 수학 등의 수업에는 AI 선생님이 참여한다. 당장 3년 안에 자녀가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보낼 학교가 이렇게 급격하게 변화한다는 사실이 부모에게는 커다란 두려움이 되고 결국 고가의 사교육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런데도 수많은 양육 전문가들은 TV와 유튜브를 통해 쉴 새 없이 ‘스마트폰을 없애라’고 조언한다. 스마트폰을 없애는 것이 정말 대안인가. 디지털 세대를 길러내는 아날로그 양육자들은 오늘도 커다란 변화의 시대에 스마트폰과 내 아이의 관계 설정을 위해 고뇌해야 한다.
저자들은 책의 말미에 교육 당국, 언론인 등 사회 각계의 사람들이 가정이 디지털의 역습으로 겪는 딜레마와 어려움을 이해하고 현실적인 대책을 마련해주길 촉구한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현실을 담아내지 못한 책상에서 만들어낸 정책이 각 가정에 얼마나 많은 비용을 초래하고 있는지 이 책을 통해 살펴봤으면 한다. 2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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