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들이 환경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사업 영역에서 탄소 중립을 전면 추진하고 있지만 환경단체들의 압력으로 차질을 빚고 있다. 시위나 기자회견을 넘어 사업과 투자 자체를 저지하려는 시도에 1조 원 이상 투자된 가스전 시추마저 중단된 상태다. 가스전은 생산 과정에서 탄소포집·저장(CCS) 기술을 적용해 탄소를 줄이는 방식을 채택했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SK E&S가 주요 사업자로 참여한 호주 바로사 가스전 개발 사업의 시추 공사가 1년 가까이 멈췄다. 지난해 9월 호주 현지에서 환경단체와 원주민들이 제기한 시추 인허가 관련 가처분 신청에서 패소한 후 아직 공사를 재개하지 못한 것이다. SK E&S 관계자는 “시추 작업에 한정된 건으로 가스전 개발 전체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유효하다”며 “원주민들과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SK E&S는 바로사 가스전에서 2025년부터 매년 약 130만 톤의 천연가스를 국내로 도입하는 사업을 진행해왔다. 2012년부터 1조 5000억 원 이상을 투입한 대형 프로젝트로 가스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를 줄이기 위해 CCS 기술을 적용한다. CCS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압축·수송 과정을 거친 뒤 땅속에 저장하는 기술이다. 에너지·철강·시멘트 등 기존 산업의 효율성과 사업성을 유지하면서도 이산화탄소를 감축할 수 있어 지구 온난화 문제를 해결할 현실적 대안으로 꼽힌다.
SK E&S는 CCS 기술을 활용해 땅속에서 천연가스를 뽑아내는 과정에서 발생한 200만 톤을 CCS 기술로 감축하고 천연가스 액화 작업과 운송 공정에서 추가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는 탄소배출권 등을 통해 줄일 계획이다. 또 생산된 천연가스는 기존 난방용 등이 아니라 청정에너지인 블루수소 원료로 활용할 예정이다.
하지만 일부 환경단체들은 CCS의 탄소 감축 효과가 아직 충분치 않다며 사업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호주 현지는 물론 국내 환경단체들도 지난해부터 바로사 가스전 개발에 공적 금융을 제공한 기관들을 대상으로 감사원 감사 청구와 금융 지원 금지 가처분 소송 등을 제기했다.
법원과 감사원은 이들의 신청을 모두 기각했지만 규제 이슈가 등장할 때마다 투자 회수를 주장하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2050년 탄소 중립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블루수소·CCS 같은 기술이 필수적”이라며 “무조건 사업을 중단하라는 환경단체의 주장으로 기업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가스전뿐 아니라 철강 등 굴뚝산업 전반으로 환경단체의 발목 잡기는 계속되고 있다. 포스코는 석탄이 아닌 수소로 철을 생산하는 수소환원제철을 통해 탄소 저감 목표를 이행할 계획이다. 하지만 시작 단계부터 환경단체의 반대에 부딪혔다. 포스코가 수소환원제철 건립을 위해 추진 중인 바다 매립이 해양생태계를 위협한다는 이유에서다.
포스코가 지난 13일 개최한 수소환원제철 관련 2차 합동설명회도 가까스로 진행됐다. 환경단체들은 "환경영향평가가 부실하고 과학적이지 않다"며 설명회를 저지했다. 포스코는 지난 6월 1차 합동설명회 이후 2차 설명회를 열기 위해 인근 주민들을 대상으로 총 7차례의 사전 설명회를 개최하며 진땀을 뺀 것으로 알려졌다.
시멘트 업계도 2018년부터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사업의 일환으로 시행한 폐기물 재활용 사업에 대해 환경단체의 공격을 받았다. 5월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시멘트 업계가 발암물질을 다량 함유한 폐기물까지 투입해 시멘트를 만들면서도 친환경 사업이라고 포장한다고 주장했다. 3월에는 정부가 개최한 탄소감축계획안 공청회에서 기후위기비상행동을 비롯한 환경단체 회원들이 기습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탄소를 줄인다고 기업 문을 닫게 할 수는 없다”며 “기업이 친환경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최적의 대안을 찾고 이행할 수 있도록 감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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