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벤처캐피털(VC)과 사모펀드(PEF) 운용사 등 기관투자가들의 투자 기업에 대한 통제 권한을 소액 투자자보다 인정하면서 유사 소송이 발생하는 등 파장이 커질 조짐이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13일 대법원은 디스플레이 제조사 뉴옵틱스(투자자)가 클라우드 기업 틸론(피투자 기업) 등을 상대로 낸 상환금 청구의 소송을 파기환송했다. 판결문을 살펴보면 사실상 기관투자가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볼 수 있다. 특정 주주들에게만 사전동의권을 부여한 것은 무효라며 피투자 기업이 상환금을 지급할 이유가 없다는 원심 판결을 뒤집고 특별한 경우 차등적 대우가 가능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틸론의 경우 뉴옵틱스로부터 투자를 유치한 후 추가 유상증자를 진행했는데 이 과정에서 사전 동의를 얻지 않은 것이 문제의 발단이 됐다. 뉴옵틱스는 계약서상 사전동의권 위반을 근거로 투자금 상환을 요청했지만 틸론이 돌려줄 수 없다고 나서자 이번 소송이 시작된 것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회사가 일부 주주에게 우월한 권리나 이익을 부여해 다른 주주들과 다르게 대우하는 것도 법률이 허용하는 절차와 방식을 따르거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 허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번 재판에서 가장 큰 쟁점은 주주 평등의 원칙보다 투자 계약 과정에서 맺은 사전동의권이 우선하느냐였다. 보통 PEF나 VC들은 투자 과정에서 기업의 주요 경영상 결정에 대한 사전동의권에 관한 계약을 추가하고 이를 지키지 않으면 투자금 상환을 요구하고 있다. 보통 유상증자, 사채권 발행, 대표이사 변경, 자회사 매각 등의 조항이 포함된다.
PEF나 VC들은 이번 법원의 판결로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자칫 대법원에서 원심 판결을 인용했을 경우 그동안 맺은 투자 계약서는 물론 앞으로 계약에도 모두 사전동의권 내용을 삭제해야 했기 때문이다. 투자 업계에서는 사전동의권은 주주 평등 원칙을 위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른 주주들의 이익에도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윤건수 한국벤처캐피탈협회 회장은 “투자 과정에서 사전동의권을 부여하는 것은 일부 주주에게 회사의 경영 활동에 대한 감시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장점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종건 법무법인 이후 대표변호사는 “일부 소수 주주가 지배 주주의 주요한 경영 사항에 대한 감시·감독 등을 위해 권한이나 지위를 부여받는 정도로는 다른 주주에게 불이익을 준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금융감독원은 이날 틸론에 대해 3·6월에 이어 무려 세 번째 정정신고서 제출을 요구했다. 금감원은 대법원 파기환송 결과에 따라 틸론의 재무구조가 더욱 악화할 가능성이 있다며 관련 대응 방안을 기재하라고 주문했다. 올 들어 기업공개(IPO)에 나선 기업 가운데 증권신고서 정정 요청을 두 차례 이상 받은 회사는 틸론이 유일하다. 금융투자 업계에서는 틸론이 증권신고서를 새로 제출하더라도 효력 발생 기간(10영업일) 등을 고려하면 상장 예비 심사 효력이 만료되는 8월 9일까지 상장 절차를 마치기 어렵다고 내다봤다. 사실상 코스닥 이전 상장이 사실상 물 건너간 게 아니냐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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