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주요 연구기관이나 연구 지원 기관, 대학에서 미국 국립보건원(NIH) 등 해외 유수 연구소와 협력을 진행할 때 내실을 다지기보다 보여주기 식이 많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에서 최근 국제 공동 연구개발(R&D) 협력에 드라이브를 거는 것은 바람직하나 자칫 예산 낭비가 이뤄지지 않도록 치밀한 전략 마련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많다.
미국 NIH의 주요 연구소 중 하나인 미 국립심폐혈액연구소(NHLBI)의 한 고위 관계자는 19일 익명을 전제로 “한국에서 NIH와의 R&D 협력과 인력 교류를 많이 원하지만 실제 잘 이뤄지지는 않는다”고 털어놓았다. NIH는 예산이 지난해 450억 달러(약 57조 1500억 원), 올해 475억 달러(60조 3250억 원)나 되는 미국 최대 연구소로 산하에 27개의 연구소와 센터를 두고 있다.
이 관계자는 “일본의 경우 일본과학재단(Japan Science Foundation)으로 창구를 일원화해 NIH와의 협력을 모색하고 한 번 협력을 시작하면 20~30년은 지속되는 특징이 있다”며 “하지만 한국은 기관장이 양해각서(MOU)를 맺는 데 급급하고 그 기관장이 바뀌면 없었던 일이 된다”고 꼬집었다. 실제 NIH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있는 한국 연구자나 한국계 미국인 과학자들이 적지 않지만 한국의 연구기관·대학 등과 NIH 간 실질적 협력은 거의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국내외 기관끼리 협정을 맺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가동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은 게 현실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국제 연구의 방향과 전략을 정확히 설정해 장기적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남준 난양공대 석학교수는 “한국에서 국제 공동 연구 어젠다와 방식을 정해 어떻게 활성화할지 계획을 짜야 한다”며 “지금 다른 R&D 예산을 줄여 국제 공동 연구에 투입하는 것으로 아는데 치밀한 전략이 없으면 자칫 세금 낭비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희용 NIH 분자신호실험실 치프는 “NIH에서는 고위험 연구를 할 수 있게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가 정착돼 있는데 한국에서 국제 공동 연구 활성화를 할 때 이런 점까지 감안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NIH는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면서 독창적인 선도 연구를 장려하고 기술사업화에 나서도록 한다”며 “무엇보다 실수와 실패를 용인하는 R&D 생태계를 중요하게 여긴다”고 전했다.
국내 연구현장에서도 국제 협력 가속화에 대한 전략적 접근을 주문하고 있다. 국내 정부출연연구기관의 한 박사는 “정부에서 시약 구매나 연구 활동에 쓰는 직접비 20%를 삭감하면서 이를 만회하려면 국제 공동 연구를 제안하라고 했다”며 “이렇게 졸속으로 접근하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신명호 과학기술노조 정책위원장(한국항공우주연구원 지부장)도 “인력을 키우기 위해 국제 공동 과제를 만드는 것은 좋지만 단시일 내에 뭔가 한다면 사기꾼에게 돈만 가져다주는 일 아니냐”고 지적했다.
한편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최근 “외국의 잘하는 곳(연구기관)들과 집중적으로 협력 연구를 한다든지, 커넥션을 만들어서 학생도 보내고 연구도 같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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