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스자산운용이 독일 트리아논빌딩에 투자한 펀드를 살리기 위해 회사 자금 150억 원을 추가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리파이낸싱(차환) 전제 조건으로 잠재 대주단이 요구한 추가 자본 출자 금액을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만 시장에서는 펀드에 투자한 다른 기관들이 추가 출자보다 상각 처리에 무게를 두고 있는 만큼 이지스운용이 결국 대규모 손실을 보고 헐값에 빌딩을 재매각할 가능성도 여전히 높다고 분석했다.
21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이지스운용은 전일 펀드 판매사들과 진행한 질의 회신에서 “펀드 정상화를 위해 고유 자금 150억 원을 투입하는 내부 심의를 마쳤다”고 밝혔다. 앞서 이지스자산운용과 리파이낸싱을 논의 중인 잠재 대주단은 이보다 많은 5000만 유로(약 708억 원) 수준의 자본금 추가 납입을 요청한 바 있다. 트리아논빌딩의 담보인정비율(LTV)을 낮춰 자금 회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대출 관련 약정서상 LTV가 70%를 넘으면 기한이익상실(EOD) 사유가 발생한다. 지난해 12월 기준 트리아논빌딩의 LTV는 EOD를 간신히 면한 69.1%였다.
업계는 이지스운용의 150억 원 투하 결정에도 트리아논빌딩이 편입된 ‘이지스 글로벌 부동산 투자신탁 229호’를 되살리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대주단의 요구액을 채우는 데 필요한 나머지 550억 원을 확보할 경로가 마땅치 않은 탓이다. 업계에 따르면 해당 펀드에 투자한 하나증권(1350억 원)과 키움그룹(380억 원) 등은 이지스운용의 추가 출자 의사 타진에 확답을 주지 않고 있다. 기관 대다수는 고금리 국면에 따른 현지 조달 금리 상승과 유럽 상업용 오피스 빌딩 가격의 하락세를 감안해 펀드 자산을 상각하는 방안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지난해 말 트리아논빌딩의 가치는 펀드 설정 당시인 2018년 10월 9100억 원보다 16% 정도 싼 7700억 원까지 떨어졌다. 한국투자리얼에셋자산운용이 투자한 벨기에 TDO 빌딩(벨기에 법무부 산하 기관 입주)도 4월 661억 원의 감정평가액을 기록해 2019년 매입가 2132억 원의 3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펀드를 살리기 위한 시간이 부족하다는 점도 이지스운용에 불리한 요소로 꼽힌다. 펀드 만기가 10월 말이라서 그 이전 매각 가능성을 감안하면 늦어도 이달 말까지는 리파이낸싱 실행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만약 추가 자금 조달이 불발되면 헐값에 빌딩을 임의 매각할 수밖에 없어 이지스운용과 기관투자가들이 대규모 손실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이지스자산운용이 2018년 국내 공·사모펀드와 현지 공동 투자 등으로 모집한 금액은 2억 9380만 유로(약 3700억 원)다. 개인이 투자한 공모펀드의 설정액만 약 1억 4420만 유로(약 1875억 원)에 달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만기 도래 전에 기관이 십시일반으로 자본을 추가 납입하면 대규모 부실 사태는 피할 수 있는 펀드가 꽤 있다”며 “이를 외면하면 투자자 보호를 위해 더 큰 비용을 치를 수도 있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