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한 지구를 위해 플라스틱 일회용품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일상생활에서 텀블러와 장바구니를 챙기는 이들이 점차 늘고 있다. 주문한 음식을 포장해올 때도 미리 준비한 개인 용기에 담아오는 ‘용기내 챌린지’를 생활화하는 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정부 역시 매장 내 일회용품 사용을 금지하는 등 플라스틱 사용 감축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이미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양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배출됐고 지금 이 순간에도 버려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미 늦은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 과연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가장 효과적이며 현실적인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이 바로 재생 플라스틱이다. 국내에서는 올 2월 식품 용기에도 재생 플라스틱을 사용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되면서 재생 플라스틱 용기를 사용한 제품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특히 한국코카콜라는 법 개정 3개월 만인 올 5월 재생 플라스틱을 10% 함유한 패키지의 제품을 선보이며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이 과정을 총괄한 테크니컬 디렉터 최진호 한국코카콜라 상무를 만나 식품용 재생 플라스틱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봤다. 식품용 재생 플라스틱 기술은 어디까지 왔으며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변모하게 될까.
◇식품 용기도 ‘재생 플라스틱’ OK=지난 몇 년간 재생 플라스틱을 사용한 제품들이 늘었지만 식품용 플라스틱만큼은 예외였다. 음식을 담는 만큼 안전성을 깐깐하게 따져야 하기 때문이다. 식품용 플라스틱에 ‘화학적 재생’ 방식만을 허용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화학적 재생 방식은 고온의 열과 압력을 가해 분자 단위로 분해한 뒤 재조합하는 방식으로 에너지 사용량과 비용이 높다. 무엇보다 아직까지 국내에는 화학적 재생 플라스틱을 처리할 수 있는 업체가 없다. 이런 이유로 식품용 재생 플라스틱에도 ‘물리적 재생’ 방식을 허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물리적 재생이란 폐플라스틱을 깨끗이 씻어 잘게 잘라낸 뒤 열을 가해 칩 형태로 만들어 새로운 제품으로 가공하는 방식을 말한다. 화학적 재생 방식에 비해 에너지가 훨씬 적게 소모될 뿐더러 처리 공정도 간단하다. 다만 안전성을 위해 원래 식품용으로 사용됐던, 깨끗한 플라스틱을 추려내야 한다는 번거로움이 있다. 2021년 12월 공동주택과 단독주택에서 투명 페트병을 분리배출하도록 의무 시행된 배경이기도 하다.
서울시가 올 4월 국내 최초로 아리수에 물리적 재생 플라스틱 페트병을 적용했고 뒤이어 5월 코카콜라가 업소용 코카콜라 1.25ℓ 제품에 10%의 재생 플라스틱을 사용하기 시작했다(업소용 코카콜라 1.25ℓ는 코카콜라 제품군 중 가장 많이 판매되는 제품이다). 최 상무는 “해외에서는 이미 재생원료 100%를 사용한 코카콜라가 판매되고 있다”며 “이번 국내 출시 제품에서 재생원료 비율이 10%인 이유는 기술적인 문제 때문이 아니라 국내 재생원료 수급이 아직까지는 불안정해서”라고 말했다. 이어 “재생원료 비율을 계속 높여 2030년 50% 이상의 재생원료를 사용하겠다는 본사의 글로벌 목표를 달성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무한히 재생한다…‘보틀투보틀’의 마법=이렇듯 음료 페트병을 다시 음료 페트병으로 사용하는 순환 체계를 ‘보틀투보틀(bottle to bottle)’이라 부른다. 최 상무는 “여러 번 재생한다고 해서 내구성이 떨어지거나 하지는 않는다”며 “우리보다 먼저 보틀투보틀을 시행한 해외 사례를 보면 미미한 변색 정도가 발견될 뿐 재생 플라스틱 용기의 내구성이나 안전성 문제는 불거진 적이 없다”고 말했다. 또 “한국은 다른 나라보다 식품용 플라스틱 사용 기준이 엄격한 편이라 아마 변색조차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며 “시스템만 자리 잡는다면 플라스틱 페트는 무한히 재생해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이라고 덧붙였다. 식품 용기에 재생 플라스틱을 사용하는 데 있어 혹시나 위생 및 안전성 문제는 없냐는 질문에는 “폐플라스틱 플레이크는 환경부에서, 플레이크를 가공해 칩으로 만드는 공정은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각각 안전성 검사를 한다”며 “협력사가 사용하는 코카콜라의 재생페트(r-PET process) 장비도 미국식품의약국(FDA)의 안전성 검증을 받았다
이렇듯 장점이 많은 ‘보틀투보틀’이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제도도, 사회적인 인식도 걸음마 수준이다. ‘보틀투보틀’ 시스템 정착을 위해 최 상무는 두 가지를 강조했다. 첫째, 투명 음료 페트병의 철저한 분리배출이다. 최 상무는 “투명 페트 분리배출 기준을 아직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다”며 “투명한 플라스틱이라도 비식품에 사용된 것은 투명 페트로 배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일회용 커피컵이나 마트에서 과일·채소 등 식품을 포장한 플라스틱은 식품용이라고 하더라도 페트(PET)가 아닌 폴리프로필렌(PP)을 사용한 경우가 많아 재생원료에 섞여 들어갈 경우 원료의 질을 저하시킬 수 있다. 오직 생수병과 음료병으로 사용된 투명 페트만 분리배출해야 한다는 얘기다. 둘째, 재생원료에 대한 인식 제고와 수요 증가다. 최 상무는 “현재 재생원료는 새 플라스틱에 비해 비용이 40% 비싸다. 재생 플라스틱 수요가 늘어나 파이가 커져야 재생원료 단가가 떨어지고 수급도 안정화될 것"이라며 “정부에서 업체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관련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쓰레기가 돈이 되는 구조’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1997년부터 음료 업계에서 기술 관련 업무를 담당해왔다는 최 상무는 최근의 환경과 관련한 업계 움직임에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예전에는 1.5ℓ짜리 코카콜라 페트가 47g이었다”며 “무게를 줄이면 소비자들이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끊임없는 경량화를 통해 41g까지 내려왔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도, 산업계도 지속 가능한 경영에 대한 인식이 매우 높아졌다는 생각이 든다”며 “앞으로는 분명 더 많은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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