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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공사도 두곳만 입찰…설계·감리까지 '엘피아 인맥' 판쳐

[아파트 철근 누락 사태]

◆ 부실 키운 '건설 카르텔'

LH 제도개선 불구 전관예우 여전

최근 5년 유관업체와 203건 계약

감리도 돈줄 쥔 시공사 눈치에

공사 문제점 제대로 지적 못해

공직자 재취업 심사 강화 시급

1일 오전 경기도 오산시 세교2 A6블록 아파트 주차장에서 전단 보강근(철근) 누락에 따른 보강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전날 발표한 무량판 구조 아파트 91곳에 대한 전수조사 결과 15곳은 설계 오류 등을 이유로 철근을 빠뜨린 것으로 나타났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건설 업계의 이권 카르텔 타파를 강력하게 주문한 것은 카르텔을 최근 연이어 발생한 아파트 부실 시공의 주 원인으로 보기 때문이다. 올 4월 인천 검단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 사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 발주 아파트의 무더기 철근 누락은 설계·감리·시공 등 전 과정의 총체적 부실에서 비롯됐고 이는 건설 업계에 뿌리 깊게 자리한 이권 카르텔의 영향이라는 것이다.

1일 시민단체와 업계 관계자들은 설계 수주 단계부터 이권이 개입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LH의 경우 업계에서 ‘엘피아’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전관예우 의혹이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다. 공공주택 설계, 감리 업체 공모에서 LH 퇴직자가 재취업한 곳이 상당수 일감을 따가는 경우가 많아 소위 전관예우에 의한 ‘인맥 수주’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LH에서 근무한 2급 이상 퇴직자가 최근 5년간 재취업한 용역 업체 수는 9개사이고 이들 업체가 LH와 2019년부터 올해까지 계약한 설계·감리 건수는 203건, 2319억 원에 달했다.



정택수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책국 부장은 “LH의 건설 사업 관리 용역 입찰을 보면 대형 사업에도 두 개 업체만 입찰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며 “상위 업체들끼리 돌아가며 나눠 먹기 하는 정황이 포착되며, 이들 업체의 90%는 ‘전관 업체’였다”고 지적했다. 이어 “LH는 업체 선정을 위한 심사위원이 전원 외부 위원이어서 카르텔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외부 심사위원을 LH가 선정하는 만큼 LH의 영향에서 온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고 덧붙였다. LH는 2021년부터 설계 및 감리 업체 선정을 위한 심사위원 7명 전원을 외부 위원으로 꾸려 운영 중이다. 전관 특혜 의혹을 차단하기 위한 차원에서 기존의 내부 위원 2명, 외부 위원 5명에서 전부 외부 위원으로 바꿨지만 여전히 문제 제기는 계속되고 있다.

수주 이후도 문제다. 설계 과정에서도 하청이 연쇄적으로 이어지면서 품질 관리가 제대로 안 된다는 지적이다. LH 등 발주청이 설계 용역을 주면 건축사(설계 총괄)가 구조기술사(하중 등 건물의 구조 계산)에 구조설계를 재용역하고, 또 구조기술사는 자신이 직접 구조설계를 하지 않고 경력이 낮은 직원에게 일을 맡기는 경우가 많아 설계 단계부터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종훈 한미글로벌 회장은 “건축의 가장 기본이 되는 설계 품질을 높여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구조기술사에 대한 대우가 매우 형편없고 이마저도 거의 다 하청을 주는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1일 공사가 진행 중인 경기도 파주시 운정3(A23) 단지의 모습. 전날 국토교통부는 지하주차장 철근을 빠뜨린 한국토지주택공사(LH) 아파트 15개 단지를 공개했으며, 파주 운정3(A23)은 공개된 단지 가운데 공사 중인 곳이다. 연합뉴스


최후의 안전판이 돼야 할 감리 역시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LH나 건설사에서 퇴직한 인물이 감리 업체로 재취업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실제로 국토교통부가 전날 공개한 LH의 철근 누락 아파트 15개 단지 중 일부는 LH 고위직 출신 인사가 취업한 업체에서 감리를 맡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A 업체는 2021년 2월 LH와 ‘인천가정2 A-1블록’ 임대아파트 건설 공사의 감리 용역 계약을 체결했는데 이 업체는 LH 출신 2급 이상 고위 임직원 두 명이 재취업한 곳이다. 전직 감리 회사 직원은 “감리 회사가 설계나 공사의 문제점을 지적하면 발주처나 시공사로부터 ‘공사 기간이 늘어진다’ ‘비용이 초과된다’며 압박을 받는 게 현실”이라며 “이에 제대로 문제 제기를 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LH의 재취업 관리 대상이 2급 이상 고위직에 국한돼 있다는 점이다. LH는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2급 이상 임직원의 퇴직일로부터 3년 이내에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취업 심사를 받아 취업 제한 기관에 취업한 경우와 1급 이상 임직원의 퇴직 후 10년간 취업 제한 기관에 취업해 취업 사실이 신고된 경우만을 관리하고 있다. LH 임직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3급 이하 직원에 대해서는 관리 공백이 발생하는 것이다. 올해 2분기 기준 LH 전체 임직원은 6778명이며 이 가운데 3급 이하는 6352명으로 전체의 93.7%를 차지한다. 2급 이상 고위직은 426명에 그친다.

전문가들은 그동안 공사 현장의 안전 강화를 위해 수많은 제도와 법률이 만들어졌지만 이권 카르텔 관행을 척결할 수 있는 더 강력한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 부장은 “전관예우가 자리 잡지 못하도록 공직자 재취업 심사 과정을 더욱 엄격히 하고 고위 임직원이 재취업을 하더라도 수주 등에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자리로 못 가도록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아가 설계나 감리 등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원스트라이크 아웃’ 등 강력한 페널티를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현재는 국토부에서 벌점제도를 운영해 입찰 참가 자격에 제한을 두는 방식으로 불이익을 주고 있는데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강력한 처벌 규정이 만들어지면 감리 업체들이 발주처·시공사의 눈치를 보지 않고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는 토대가 조성될 것”이라고 밝혔다. 안형준 건국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설계·감리·시공 단계별 전문성도 높여야 한다”며 “현재는 경험·전문성을 따지지 않고 1급 건축기사라면 무조건 감리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했는데 앞으로는 건축 구조에 대한 전문 자격이 있거나 일정 수준 이상의 경력을 갖춘 감리자가 공사 현장에 배치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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