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의 수도인 암스테르담에서 남동쪽으로 80㎞가량 떨어진 바헤닝언밸리. 농식품·농생명 분야에서 세계 제1의 혁신 클러스터로 꼽힌다. 이곳은 바헤닝언대를 중심으로 학교와 연구소·기업 등이 어우러진 혁신 생태계가 갖춰져 네슬레·하인즈 등 수많은 글로벌 농식품기업의 연구개발(R&D)센터가 활동한다.
이 가운데 현지 파츠사의 경우 온실의 골칫거리인 나방의 궤적을 감지해 순식간에 산산조각 내는 초소형 드론을 수년 전에 내놓았다. 나방이 수백 개의 알을 낳아 애벌레가 되는 것을 막아 친환경·유기 농업을 하는 것이다. 네덜란드에서는 대형 첨단 유리온실을 통해 화훼·과수·채소 등을 키우는 스마트팜을 구현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한다. 태양광·지열 등 신재생에너지 이용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농식품 가공업도 병행해 언뜻 봐서는 농장인지 공장인지 쉽게 구분하지 못할 정도다.
현지에서는 돼지 농장만 해도 생산비·판매가·질병·번식 등 데이터를 잘 관리하고 동물 복지에도 신경을 써 돼지가 연평균 27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우리나라 돼지의 연평균 출산 숫자보다 40%가량 많다.
농업 혁신 실험은 농토가 부족할 경우에 대비한 수상 농장(플로팅팜)으로까지 이어진다. 암스테르담 남서쪽 80㎞ 지점의 로테르담에는 강가에 육지와 연결된 ‘플로팅팜’이 있다. 테스트베드 성격의 이 농장은 위층에서는 젖소 등을 키우고 유제품을 가공하며 아래층에서는 가축 분뇨로 만든 거름으로 농사를 짓는다. 젖소가 먹는 사료 등 식량은 컨베이어벨트로 나르고 분뇨도 기계로 바로 처리해 농장 밖에서는 냄새가 거의 나지 않는다. 이 밖에 네덜란드는 농업에 보건·복지를 결합한 창의적인 발상으로 노인과 환자의 요양을 위한 ‘케어팜’도 정착시켰다. 케어팜은 다른 유럽 국가로 확산되고 있다.
민승규 한국벤처농업대 설립자(세종대 교수)는 “농업에는 종자·생산·유통·농기계·금융·교육·관광뿐 아니라 인공지능(AI)·정보통신기술(ICT)·빅데이터·농생명 등 다양한 밸류체인이 존재한다”며 “농식품에 과학기술을 입히는 푸드테크 분야에서 도전적 실험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네덜란드가 우리나라에 비해 국토와 인구 규모가 각각 3분의 1밖에 안 되는데도 농산물 수출액이 세계 3위(2021년 1084억 달러)에 달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악취를 내뿜고 분뇨와 탄소 배출이 많은 공장식 축산의 대안이 될 수 있는 대체육·배양육의 R&D도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다. 대체육은 콩·밀·녹두 등의 DNA를 활용해 고기의 질감·육즙·색깔 등을 구현하고 더 많은 영양소를 함유한 식물고기다. 배양육은 동물의 줄기세포를 배양해 만든 세포배양육, 곰팡이·효모 등으로 만든 미생물 식품을 합친 개념이다. 실리콘밸리의 ‘임파서블푸드’와 ‘비욘드미트’는 이미 수년 전 버거·치킨너깃·소시지 등의 대체육을 내놓았다. 임파서블푸드는 대두 뿌리혹에서 추출한 레그헤모글로빈에 정밀 발효 기술을 접목해 고농도의 식물성 단백질을 생산해 수많은 식료품점·식당에 납품하고 있다. 다만 아직 소비자의 인식이 뒤따르지 않아 최근 인원 감축 등 소강 상태를 보이고 있으나 블룸버그는 2020~2030년 대체식품의 연평균 성장세를 18.6%로 제시했다. 조남준 난양공대 석학교수는 “이제는 학문과 업종 간의 경계가 허물어져 융합하는 ‘크로스 이코노미’ 시대”라며 “2030년대 중반 이후에는 대체육·배양육이 공장식 축산을 적지 않게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실제 올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3’에서는 미국 ‘퍼펙트데이’가 만든 대체유 단백질 아이스크림이 인기를 끌었다. 이 회사는 아이스크림·치즈·빵 등의 원료가 되는 발효유 단백질을 만든다. 평소 환경·사회·지배구조(ESG)를 강조하는 최태원 SK 회장 겸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현장에서 “국내에는 수입을 안 하느냐”며 높은 관심을 표했다. 그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미국 ‘와일드타입’이 연어의 세포를 배양해 만든 연어 공기 사진을 올리며 “어획·양식·운송 과정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를 획기적으로 줄이고 바다 생태계를 보호할 수 있다”고 했다.
이처럼 푸드테크는 식품(Food)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로 식품의 생산·유통·소비 전반에 정보기술(IT)·바이오기술(BT)·AI 등을 융합해 새로운 식품과 서비스 개발, 공정 효율화, 유통 시간 단축 등 새로운 부가가치를 꾀하는 것을 일컫는다. 식물·미생물·곤충 대체식품, 간편식·케어푸드, 식품 프린팅·로봇 등 첨단 공정과 스마트 안전관리, 주문 배달앱 등 식품 유통, 서빙·주방 로봇과 무인주문기, 음식·식당 추천 등 맞춤형 정보 제공, 친환경 포장을 예로 들 수 있다. 디지털 육종·스마트팜·스마트축산·스마트유통·정밀농업 등 애그테크와 관련 하드웨어·소프트웨어 기술 개발도 마찬가지다. 스마트팜 기업인 넥스트온 송영진 대표는 “충북 옥천의 고속도로 폐터널 안에 스마트팜을 구축해 고품질의 녹색채소와 딸기를 대량으로 재배하고 있다”며 “실외 농지의 일부만 실내 수직 농법으로 돌려놓아도 엄청난 규모의 숲을 회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세계 푸드테크 시장의 규모는 2020년 기준 5542억 달러(GS&J 추정, 당시 환율로 665조 원)에 이른다. 시장 규모가 2017~2020년 연평균 38% 성장한 것을 감안하면 지금은 1000조 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분야별 시장 규모는 온라인 식품거래, 케어푸드, 간편식, 대체식품 순으로 많은데 앞으로는 대체식품, 식품프린팅·로봇 등 생산공정 기술에서 높은 성장세가 예상된다. 미국의 경우 지난해 11월 식품의약국(FDA)에서 ‘업사이드푸드’의 닭고기 세포배양 기술의 안전성을 승인했고 농무부에서는 세포배양 시설 등록·검사, 제품 검사 등을 진행한 후 제품 판매가 가능하도록 했다. 싱가포르도 2020년에 배양육을 치킨너깃에 사용할 수 있도록 승인했다. 온실가스를 줄이고 물과 토지 사용을 대폭 감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은 2021~2027년 허라이즌유럽을 통해 식물·곤충 등을 활용한 대체 단백질 소재 개발 등 연구 지원에 나서고 있다. 스위스 ‘네슬레’는 2021년 완두콩을 사용한 식물성 유제품 브랜드를 내놓았다.
김춘진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사장은 “기후위기가 심각한데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2019년 통계에 따르면 먹거리 생산·가공·유통·소비·폐기·환경 파괴 과정에서 나오는 온실가스 배출 비중이 31%가량 차지하는 것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이어 “온실가스 배출 감축, 식량안보, 농식품 수출 경쟁력 향상을 위해 미국·유럽·일본처럼 푸드테크에 대한 과감한 정책 지원과 산학연의 유기적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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