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 밸류체인에 포함된 기업들의 매출에서 현대차·기아가 차지하는 비중이 빠르게 낮아지고 있다. 현대차·기아가 안정적인 매출을 보장해주는 든든한 ‘맏형’이지만 고객사를 다변화하는 것이 지속 가능한 성장을 담보할 수 있어서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모비스(012330)가 올해 상반기 현대차·기아를 제외한 글로벌 업체로부터 부품 계약을 수주한 금액(비계열 수주)은 27억 1000만 달러(약 3조 5400억 원)로 나타났다. 상반기 기준 역대 최대 실적으로 올해 목표(53억 5800만 달러)의 51%를 달성했다. 북미와 유럽·남미 지역 완성차 제조사를 대상으로 섀시, 차량용 인포테인먼트(IVI) 등의 제품을 공급하는 계약을 맺은 결과다. 북미에서는 비계열 수주 목표의 86%를 상반기에 따냈다. 특히 9일 독일 폭스바겐과 수조 원 규모의 전동화 핵심 부품을 공급하는 계약까지 체결하면서 현대차·기아 의존을 빠른 속도로 낮춰가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그룹사 이외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북미와 유럽·일본에 현지 전담 조직을 꾸려 맞춤형 영업에 힘썼다. 각종 전시회에도 참여하며 글로벌 고객과의 접점을 넓혔다. 올해 9월에도 독일 뮌헨에서 열리는 IAA 모빌리티쇼, 미국 디트로이트 오토쇼에 참가할 예정이며 10월에는 일본 도쿄에서 예정된 재팬 모빌리티쇼에 처음으로 핵심 기술을 출품할 계획이다.
HL만도(204320)는 올 2분기 들어 처음으로 현대차그룹 매출 의존도를 50% 아래로 낮췄다. 2019년에는 매출의 60%를 현대차그룹에서 얻었지만 이 비중이 올해 들어서는 49%까지 낮아졌다. 전기차 부품 사업이 확대되는 와중에 북미 등에서 해외 신규 고객을 유치하며 매출처를 다변화한 결과다.
HL만도는 2027년까지 현대차·기아 외 수주 비율을 63%까지 높일 계획이다. 신윤철 키움증권 연구원은 “2분기 HL만도 매출에 북미 전기차 고객사의 기여도가 17%에 달했다”며 “고부가 전장 제품도 선보이며 비(非)현대차그룹 고객사 포트폴리오를 성공적으로 다변화해나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자동차용 강판 대부분을 현대차·기아에 공급하던 현대제철(004020)도 고객사 다변화에 발걸음을 뗐다. 현대제철이 그룹 이외의 글로벌 고객사에 판매한 강판 비중은 2018년 11%에서 지난해 17%까지 높아졌다. 올해 들어서도 글로벌 완성차 4개사를 고객으로 추가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현대제철은 올해 글로벌 고객사에 대한 자동차 강판 판매 비중을 20%로 확대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현대글로비스(086280) 역시 올해 들어서도 완성차해상운송(PCTC) 사업 부문에서 비계열 매출 비중을 50% 이상으로 유지하고 있다. 매출 절반 이상을 현대차·기아 이외의 완성차 제조사에서 거둔 것이다. 해운 사업에 처음 진출한 2010년의 비계열 매출 비중 12%와 비교하면 5배 가까이 증가했다. 현대글로비스는 폭스바겐그룹과 5년 장기 운송 계약을 맺고 유럽발 중국 수출 물량 전체를 단독으로 운송하는 등 지금까지 포드·BMW·르노·마힌드라를 비롯한 굵직한 완성차 브랜드를 고객사로 영입해왔다.
이들 기업이 현대차그룹 의존도를 낮추려는 것은 성장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다. 또 주주나 투자자에게도 더 많은 투자를 이끌 요인이 될 수 있다. 여기에 전동화, 소프트웨어중심차(SDV) 등 모빌리티 산업의 변화가 빨라지는 상황도 계열사가 매출처 다변화에 속도를 내는 이유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고객사 다변화는 단순히 매출을 높이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며 “특정 기업 의존도를 낮춰야 성장 기반을 안정화할 수 있고 내실 있는 회사로 평가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