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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勞, 40년 된 '불임휴가' 폐지도 반대…"기가팩토리 유치? 꿈 같은 얘기"

[창간기획 - Big Shift 제조업大戰]

◆제조업 脫한국 부추기는 강성노조

勞, 사측제안 수용은 '패배'로 인식

툭하면 파업에 기밀정보 요구까지

정치권도 표 의식해 勞주장 힘실어

기업들 국내투자 대신 해외로 눈돌려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올해 5월 서울 서초동 삼성사옥 앞에서 연대 투쟁 선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1월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는 윤석열 대통령과의 영상통화에서 “기가팩토리(테슬라 전기차 전용 공장)를 한국에 지어달라”는 윤 대통령의 요구에 “한국은 최우선 후보지 가운데 하나”라고 화답했다. 해외투자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는 전국 주요 지방자치단체들은 “우리 지역이야말로 최적지”라며 흥분했다.

하지만 당시에 자동차 업계는 ‘머스크의 립서비스일 뿐’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국내 자동차 업계의 전투적인 노조 문화를 머스크가 모를 리 없다는 이유에서다. 업계의 예상은 적중했다. 올해 말에 결정될 아시아 지역의 기가팩토리는 한국이 아닌 인도 쪽으로 기울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테슬라가 주도하는 전기차 시장은 늘어나는 수요에 맞춰 생산 시설을 얼마나 빠르게 확충할 수 있느냐가 경쟁력”이라며 “회사의 다급함을 오히려 협상력을 높이는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노조가 있는 나라에 어떤 기업이 수조 원의 투자를 하겠느냐”고 지적했다. 국내 기업의 투자도 경제 논리보다는 애국심에 더 의지하고 있다고 분석할 정도다.

국내 제조업 현장은 노사 간 힘의 균형이 깨진 대표적인 업종 가운데 하나다. 불법 파업으로 생산라인을 점거해 회사에 큰 경제적 손실을 끼쳐도 그동안 ‘노사 화합’이라는 이유로 구제되는 경우가 많았다. 표(票)를 의식한 정치인들이 노조의 힘을 키워주는 법안을 내놓으며 사태를 되레 더 악화시키고 있다. ‘노란봉투법’은 제조업의 탈한국을 부추기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꼽힐 정도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올해 초 국내 진출한 외국인 투자 기업을 상대로 ‘투자 활성화를 위해 필요한 개선 분야’를 묻자 가장 많은 48.8%가 노동 규제라고 답했다. 외투기업들은 한국에는 파업을 조장하는 법안들이 많아 투자를 꺼리게 한다고 지적했다.

조합원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회사의 성장도 양보해야 한다는 식의 노조 문화는 국내 기업들에도 부담이다. 현대차·기아는 20여 년 전에 체결한 단체협약 조항 때문에 해외에서 전기차 생산 시설을 지을 때마다 노조의 눈치를 봐야 한다. ‘해외 공장으로의 차종 이관 및 국내 생산 중인 동일 차종의 해외 공장 생산계획 확정시 고용에 영향을 미치는 사항은 고용안정위에서 심의·의결해야 한다'는 조항 때문이다. 실제 노조는 현대차그룹이 미국에 전기차 전용 공장을 지을 때도, 경기도 화성에 전기차 신공장을 건설할 때도 이 조항을 들어 반대하기도 했다.

지난해 7월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옛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동자들이 도크를 점거한 채 농성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노조의 불합리한 요구는 업종을 뛰어넘는다. 삼성전자 노조는 회사의 기밀인 사업 재편에 대한 정보까지 내놓으라며 사측을 압박했다. 삼성전자의 의료기기사업부 내 일부 직원들이 다른 사업부로 재배치되면서 ‘분사 또는 매각이 임박한 것 아니냐’는 소문이 돌자 사측을 몰아세우고 있다. 노조가 법에서 정한 권한을 넘어 경영 정보까지 요구하는 것은 과도한 월권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40년 이상 지나 유명무실해진 조항을 없애자는 사측의 요청이 합리적 이유 없이 노조의 반대에 부딪히기도 한다. HD현대중공업 사측은 2020년 단체협약을 하던 중 1980년대 도입된 ‘불임 시술 시 휴가 지급’을 폐지하자고 노조에 제안했다. 하지만 노조는 뚜렷한 이유 없이 사측의 제안을 거절했고 이 제안은 없던 일이 됐다. 업계 관계자는 “회사의 제안이 합리적이어도 일단 회사의 주장을 들어주는 것은 지는 것이라는 전투적 노조 문화가 조선 업계에 팽배하다”며 아쉬워했다.

도면 100번 수정 요청 땐 요청서도 100건…"새 공장 짓지 말란 소리"


기아 광명 오토랜드 공장 전경. 옛 소하리 공장인 이곳은 1970년에 자동차 공장으로 허가받아 착공됐지만 이듬해 행정 착오로 공장 주변 일대가 그린벨트로 지정됐다. 기아는 자체 공장 부지임에도 이곳에 전기차 라인 등을 증개축하려면 수백억 원의 그린벨트 부담금을 물어야 한다. 연합뉴스


수도권에 공장을 둔 국내 가전 대기업 A사는 협력사와 생산라인 고도화 작업을 진행하다가 난관에 봉착했다. 하도급법상 기술 자료 규제 탓에 제조 공정 설계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하도급법(제2조)에서 설계 도면이 기술 자료로 분류돼 도면을 수정할 때마다 일일이 기술 자료 제공 요청서를 협력사에 서면으로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설계 도면을 100번 수정하면 요청서도 100장을 작성해야 한다. 저가 공세를 펼치는 중국 경쟁사에 맞서기 위해 공정 고도화로 제품 생산성 향상에 나서려던 A사의 계획은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A사의 한 관계자는 “요구서를 100번 발급하나, 한 번 발급하나 협력 업체 기술 보호에 대한 법적 효과는 동일하다”면서 “적시에 이뤄져야 할 제조 공정 혁신이 불필요한 행정 부담 탓에 속도를 내지 못하는데, 사실상 공장을 짓지 말라는 것 같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전 세계 주요 국가와 도시들이 제조업 부활을 외치며 기업 유치에 발 벗고 나서고 있지만 국내 제조업 현장에서는 규제가 거미줄처럼 얽혀 기업을 괴롭히고 있다.

산업 현장은 물론 학계에서도 규제의 큰 틀을 ‘원칙 허용, 예외 금지’의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유야무야되고는 한다. 현 행정규제기본법상 네거티브 규제와 유사한 ‘우선 허용, 사후 규제’ 원칙이 있지만 신산업·신기술 분야에 제한적으로 적용될 뿐 기존 산업의 진입장벽이나 사업 활동 제한 규제에는 적용이 안 된다.

기아 광명 오토랜드 공장 정문. 옛 소하리 공장인 이곳은 1970년에 자동차 공장으로 허가받아 착공됐지만 이듬해 행정 착오로 공장 주변 일대가 그린벨트로 지정됐다. 기아는 자체 공장 부지임에도 이곳에 공장을 증개축하려면 수백억 원의 그린벨트 부담금을 물어야 한다. 연합뉴스


경기도 광명에 위치한 기아 광명 오토랜드는 1970년 착공됐지만 이듬해 행정 미비로 공장 일대가 그린벨트로 묶였다. 그런데 이곳이 왜 그린벨트가 됐는지 설명할 수 있는 공무원은 없다. 피해는 고스란히 기업의 몫이다. 기아는 전기차(EV) 전환 등 중요한 투자 결정을 할 때마다 까다로운 인허가 절차를 거쳐야 한다. 자체 공장 부지로 허가받은 땅이지만 수차례 공장 라인을 변경하고 투자할 때마다 수백억 원의 환경보전 부담금도 낸다. 기아는 광명 2공장을 전기차 전용 공장으로 전환하기로 했지만 그린벨트 규제가 없었다면 광명 오토랜드에 대한 기아의 투자가 더 이뤄졌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이는 올해 설립 101주년을 맞은 BMW그룹의 뮌헨 공장과 비교되는 지점이다. 시내 중심부에 위치한 뮌헨 공장은 주변에 주거지가 조성돼 있지만 지방정부와 시민들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BMW의 전동화 거점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1980년대 공장 일대가 공업지역으로 묶여 부지 확장은 어렵지만 기존에 확보한 공간 안에서 생산 시설과 차종을 유연하게 바꿔나가고 있는 것이다.

한 반도체 공장의 실험실에서 연구원들이 가스 용량을 체크하고 있다. ‘고압가스 안전관리법 시행규칙’은 반도체 산업의 특성을 고려하지 못한 규제로 생산라인 고도화에 나서는 기업들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사진 제공=산업통상자원부


반도체 산업에서는 틈새 규제들이 기업의 생산 효율을 떨어뜨리고 있다. ‘고압가스 안전관리법 시행규칙’과 ‘소방시설 분리 공사 규제’가 대표적이다. 두 규제 모두 반도체 산업 현장의 특성을 고려하지 못한 탁상행정의 전형이라는 지적이 많다. 이미 반도체 공장에서는 가스 성상별로 다른 환경의 캐비닛에 구분·보관하고 있고 저·고압가스를 한 장소에 보관해도 안전상 문제가 없다. 전문 업체만 소방시설을 짓도록 한 규제도 시장 동향에 따라 초 단위로 생산 시설 대응에 나서야 하는 반도체 기업의 발목을 잡고 있는 사례로 지적받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이나 총리가 나서서 ‘킬러 규제’에 대해 한마디할 때 반짝하는 게 규제 개선”이라면서 “이런 식의 눈 가리고 아웅 식의 행정에 치를 떤다”고 토로했다.

순유출 17조 ‘55년 만에 최대’…제조업의 脫한국 경고등


지난해 한국에서 순유출된 제조업의 투자 자금이 133억 4900만 달러(약 17조 7808억 원)에 달했다. 역대 최고치다. 노조부터 규제·세제·보조금 등의 장애물 탓에 투자처로서 매력도가 경쟁국보다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식이면 1970년대 이후의 미국처럼 제조업 공동화 현상도 빨라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3일 산업통상자원부와 수출입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제조업의 외국인직접투자액은 124억 7900만 달러(약 16조 6220억 원), 해외직접투자액(ODI)은 258억 2800만 달러(약 34조 4028억 원)로 133억 4900만 달러 순유출을 기록했다. 1968년 관련 통계 집계를 시작한 뒤 가장 많다. 올해 1분기까지의 제조업 투자금 역시 54억 7400만 달러(약 7조 2913억 원) 순유출 상태다. 배터리부터 전기차·반도체 등에 대한 해외 투자가 줄줄이 예정돼 있는 만큼 이런 추세라면 기록 경신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제조업 투자액의 순유출액이 커지는 것은 나쁜 신호다. 미국은 ‘반도체지원법’ 시행 1년 만에 218조 원의 투자금을 자국으로 끌어들였다.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통해서는 배터리·완성차 업계로부터 수십조 원의 투자금도 유치했다. 자극받은 독일·이스라엘도 각각 43조 원, 32 조원 규모의 인텔 신규 반도체 공장 유치에 나섰다. 일본 역시 대규모 감세·보조금 카드로 맞서고 있다.

반면 국내 제조업은 대기업이 반도체·배터리·전기차 등과 관련해 현지 생산 시설 확보를 위한 투자에 집중하면서 순유출이 가속화하고 있다. 지난해 해외직접투자액은 전년 대비 40.9%나 급증했다.

그러다 보니 경고등이 곳곳에서 켜지고 있다. 제조업 분야에서 유니콘((기업 가치 1조 원 이상의 비상장사)이 자취를 감춘 것이 대표적이다. 올 상반기 기준 유니콘은 22개사로 집계됐는데 이 중 제조업 기반은 단 한 곳도 없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해외직접투자 증가는 대기업의 해외 시장 개척 과정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국내 제조업의 투자 환경이 개선되지 못한 데서 기인하는 부분도 크다”며 “경직된 노조 문화와 기업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규제·세제 등 투자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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