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005930)가 올해 신규 협력사 13곳 중 11곳을 한국 업체로 채우면서 국내 협력사 비중이 처음으로 절반을 넘어섰다. 우리나라 기업 중심의 공급망을 강화해 지정학적 위기에 따른 불확실성을 최소화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더불어 상생 경영을 강화하려는 포석도 깔려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13일 삼성전자의 2023년 협력사 리스트를 보면 올해 113곳 중 59곳의 기업 본사가 우리나라에 소재했다. 지난해보다 13곳이 증가한 수치다. 이 중 11곳이 국내 기업이다. 2015년 삼성전기에서 분사한 전자 부품 기업 솔루엠과 반도체용 과산화수소 제조 업체 삼영순화, 휴대폰·전자제품 부품사인 유아이엘 등이 새로 합류했다.
삼성전자의 협력사 가운데 한국 기업은 지난해 50개(전체 103개)에서 올해 59개로 늘었다. 이에 따라 한국 기업의 비중은 2021년 39%에서 2022년 48%로 늘어난 데 이어 올해에는 52%로 절반을 넘어섰다. 삼성전자의 국내 협력사 비중이 50%를 넘어선 것은 명단 공개 이후 처음이다.
삼성전자는 지속 가능한 공급망 구축을 위해 2018년부터 주요 협력사 명단을 공개하고 있다. 공개 대상은 700여 개에 달하는 1차 협력 회사 중 거래 비중이 80% 이상이면서 대외 공개에 동의한 기업이다.
삼성전자가 국내 협력사 비중을 매년 늘리고 있는 것은 미중 갈등,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글로벌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가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여기에 미국과 유럽 등 각국이 공급망을 자국 중심으로 재편하고 있는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중국 기업의 비중이 미세하지만 줄어드는 것도 이런 배경이라고 업계는 보고 있다. 중국 협력사 수는 지난해와 같지만 한국을 비롯한 다른 지역의 협력사들이 증가하면서 그 비중은 지난해 7.8%에서 올해 7.1%로 소폭 줄었다.
반면 미국·베트남에 대한 의존도는 점차 높아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를 위해 한국에 거점을 둔 기업과의 거래 비중을 늘리는 한편 핵심 협력사의 거점을 중국에서 베트남 등으로 옮기고 있는 것이다.
실제 협력사의 국적이 아닌 삼성전자에 납품한 공장 소재지를 중심으로 살펴 보면 올해 중국에 공장을 둔 기업은 지난해(24곳)에 비해 3곳 줄어든 21곳에 그쳤다. 반면 한국은 55곳에서 62곳, 베트남은 28곳에서 34곳, 미국은 20곳에서 22곳으로 증가했다. 이러한 추세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의 ‘중국 때리기’가 계속되고 있는 데다 중국의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효과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에서 공급망에 대한 불확실성을 줄일 필요성이 대두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협력사가 늘어난 데는 이재용 회장이 크게 관심을 쏟는 ‘상생’의 영향도 적지 않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지난해 10월 취임한 후 첫 행보로 광주 소재 협력사를 찾는 등 상생 의지를 부각해왔다. 전국에 있는 계열사 사업장을 중심으로 10년간 60조 1000억 원을 투자해 제조업 핵심 분야의 공동 성장을 모색하겠다는 의지도 드러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기업과의 거래를 늘리면서 ‘안방’에 공급망을 공고히 다져 놓으면 국가 간 분쟁 등으로 인한 불확실성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며 “지속적인 상생 경영과 맞물려 삼성전자의 한국 협력사 비중은 갈수록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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