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바로 옆에서 볼 기회가 두 번 있었다. 그가 2014년 7월 우리 국회를 방문했을 때와 같은 해 10월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면담했을 때다. 당시 그는 위엄이 넘쳐 ‘황제 같은 카리스마’를 풍겼다. 김 대표와의 면담에서도 북핵 해법을 위한 중국의 역할 강화 요청에 “6자회담 개최가 중요하다”며 남북한 모두를 염두에 두는 모양새를 취했다.
문화대혁명기 산전수전 다 겪은 그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과 ‘중국몽(中國夢)’을 강조한다. 지난해 말 3연임까지 이룬 데 이어 마오쩌둥 이후 처음으로 종신 집권이라는 ‘시황제’의 꿈을 꾸는 듯하다. 당시 전국대표대회에서 후진타오 전 주석이 끌려 나가다시피 하는 모습은 상징적 단면이다.
하지만 시 주석의 1인 지배 체제가 공고해질수록 역설적으로 위험도 커지는 모양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것처럼 독재로 흐를수록 정책 결정에서 오판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시 주석이 2021년 8월 ‘공동부유(共同富裕·같이 잘살자)’를 내세우면서 ‘빅테크 옥죄기’라는 기업 압박 정책으로 후폭풍을 자초한 게 예로 꼽힌다. 양극화 심화로 40년 이상 유지된 등소평의 ‘선부론’ ‘흑묘백묘론’을 사실상 폐기한 것이다. 알리바바·텐센트 등 빅테크는 2020년 10월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의 금융 규제 비판 이후 타깃이 돼 수십조 원 이상을 당국에 헌납한 것도 모자라 집중 견제를 받았다. 자연스레 고용과 내수시장에 악영향이 미쳤다. 이는 2018년부터 본격화한 미중 패권전쟁의 심화에 비춰봐도 실책이었다. 아무리 공동부유라는 기치가 깔려 있다고 해도 ‘과학기술 굴기’ 관점에서는 손해였다. 미국이 2018년부터 대중 관세 인상을 시작으로 첨단 기업 인수와 투자, 핵심 인재 유치, 연구개발(R&D) 협력에서 전방위적으로 제동을 거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과거 일본의 ‘잃어버린 30년’과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2020년 8월 시작한 부동산 규제도 공동부유 바람으로 더 강화돼 오늘날 비구이위안 등 부동산 개발 업체, 나아가 금융권까지 디폴트(채무 불이행) 우려를 낳으며 중국 경제의 최대 뇌관이 됐다. 중국은 부동산 분야가 국내총생산(GDP)의 약 25%, 지방정부 재정 수입의 절반가량을 차지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물론 중국의 금융시장이 우리나라처럼 글로벌하게 개방돼 있지 않아 중국판 ‘리먼브러더스 사태’까지 갈 확률은 낮아 보인다. 하지만 지난해 말까지 3년간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급격한 경제성장률 저하를 자초한 데 이어 대량 실업과 소비 심리 위축, 생산 감축, 투자 부진 심화 등으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 중국의 7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3%로 2년 5개월 만에 마이너스로 전환해 디플레이션 우려를 낳고 있다. 세계경제의 엔진이던 중국 경제가 경착륙한다면 우리 경제에도 악영향이 불가피하다. 가뜩이나 우리는 중국과의 교역에서 30년간의 흑자 기조를 지키지 못하고 지난해 10월부터 계속 무역적자를 보고 있다.
시 주석의 공동부유 정책을 보면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기조인 ‘이권 카르텔 타파’가 언뜻 오버랩되는 듯하다. 지향점은 다르지만 리더십 스타일이나 뭔가 군사작전 하듯 밀어붙이는 일 추진 방식이 비슷한 측면이 있어서다. 윤 정부는 “R&D계와 교육계의 카르텔을 타파한다”며 각각 비효율 타파를 내세워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연구 예산을 삭감하고 사교육 과열 방지를 명목으로 수능 킬러 문항 삭제, 사교육 업체 세무조사 등에 나섰으나 과연 이것이 본질적인 구조개혁인지는 미지수다. 노동시장과 연금 분야 개혁도 변죽만 울리고 별다른 진척이 없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전관 카르텔을 깬다고 하지만 관피아 문제나 관료 규제 카르텔을 부수기 위한 노력도 미흡하다. 검찰 출신의 대약진 속에 법조 카르텔을 깨겠다는 의지도 찾아볼 수 없다.
어설픈 공동부유 구호는 중국 경제에 내상을 입힌 채 빛이 바랬다. 카르텔 타파가 공동부유와 말로를 같이하지 않으려면 국민적 열망에 귀 기울이고 본질에 다가서는 노력을 쏟아야 한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