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시장이 340조 원 이상으로 커지면서 가입자들이 실제 연금 수익률이 높은 사업자를 찾아 나서고 있는 가운데 퇴직연금 시장의 머니무브(자금이동)가 본격화하고 있다. 일부 증권사의 경우 유치 자금이 은행과 보험사로 빠져나간 돈보다 최대 10배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31일 미래에셋 증권에 따르면 올 1월부터 7월까지 은행과 보험, 타 증권사에서 미래에셋으로 이전한 개인연금 및 개인IRP(Individual Retirement Pension·개인퇴직연금) 규모는 3868억3000만 원으로 미래에셋에서 다른 증권사와 은행·보험사로 빠져나간 규모(1045억9000만 원)의 3.7배인 것으로 집계됐다.
증권사를 빼고 은행과 보험사만 따지면 미래에셋의 수관액(2866억 5000만 원)이 이관액(290억 4000만 원)보다 10배 가까이 많았다. 직장과 계약한 은행이나 보험사에 퇴직연금을 포함한 연금 자산을 수동적으로 맡겨오던 가입자들이 점차 실적 배당형 상품이 많은 증권사로 이동하고 있다는 증거다. 미래에셋은 증권사 가운데 퇴직연금 1위 업체다.
퇴직금 적립금 운용 규모로 봐도 상황은 비슷하다. 금융감독원 공시에 따르면 전 금융권의 퇴직연금(DB·DC·개인형IRP) 적립금은 6월 말 기준 345조8140억 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4.25% 증가했다. 이중 증권 퇴직연금사업자 14곳의 적립금은 79조1534억 원으로 같은 기간 7.19% 증가, 전체 증가율을 웃돌았다.
하지만 같은 기간 은행의 적립금은 179조3882억 원으로 5.01% 느는 데 그쳤고 보험은 73조1186억 원으로 0.67% 증가에 머물렀다. 전체 시장 규모는 여전히 은행이 압도적으로 크지만 빠르게 치고 올라오는 증권사들이 많다는 얘기다.
7월부터 본격 도입된 사전 지정 운용 제도(디폴트옵션)에 관심이 커진 연금 가입자들이 원금보장형 상품이 아닌 보다 적극적으로 연금을 운용해주는 사업자를 찾아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2분기 기준 디폴트옵션의 최고 수익률을 달성한 상위 10개 중 8개가 증권사 상품이었다.
증권사로의 머니무브가 본격화하면서 타 업권도 수성을 위한 다양한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보험업계 퇴직연금 사업자 중 1위인 삼성생명은 최근 퇴직연금 가입자도 증권사 퇴직연금 계좌처럼 상장지수펀드(ETF)를 계좌 내에서 거래할 수 있는 전산 시스템을 구축해 이르면 9월부터 ETF 투자를 할 수 있을 전망이다. 4대 시중은행이 2021년 말부터 ETF 서비스를 제공한 데 이어 보험사들도 가세했다.
이날 고용노동부는 미래에셋증권과 한국투자증권, 하나은행, KB손해보험 등 총 4곳을 2023년 우수 퇴직연금사업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40개 사업자 중 우수사업자로 선정된 절반이 증권사다.
미래에셋증권은 미래 포트폴리오(MP) 구독서비스를 통해 가입자가 쉽고 간편하게 자산관리를 할 수 있게 한 점이 높은 점수를 받았고 한국투자증권은 자체 개발한 자산운용전략 시스템을 기반으로 맞춤형 적립금운용 컨설팅을 제공해 확정급여(DB)형 자산운용 성과가 좋은 평가를 받았다. 노동부 관계자는 “퇴직연금 사업자에겐 나이 들어가는 미래 사회에 대비해 노후 자금을 굴리고 불려 나갈 사회적 책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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