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비철금속 제련 기업인 고려아연을 놓고 창업주 집안 간 지분 확보 경쟁이 재점화되고 있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현대차그룹을 상대로 53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하며 우호 지분을 확보했고 장형진 영풍그룹 고문 측이 주식을 사들이고 있다.
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장형진 영풍그룹 고문의 개인회사 에이치씨가 지난 5월 2일부터 8월 28일까지 수십 차례에 걸쳐 고려아연의 지분을 8만 4299주를 매입했다. 이는 전체 유통 주식의 0.4% 수준이다. 또한 장형진 고문의 자녀의 개인회사인 씨케이도 지난 5월 30일부터 7월 11일까지 수십 차례에 걸쳐 6만 9981주를 사들였다. 전체 유통 주식의 0.35% 수준이다. 장 고문은 장병희 영풍그룹 창업주의 차남이자 고려아연의 개인 최대주주이다. 영풍그룹은 고(故) 장병희·최기호 공동 창업주가 설립했다.
현재 고려아연의 경영은 최씨가 3세인 최윤범 회장을 비롯해 최 씨 일가가 맡는다는 점에서 장 고문 측의 잇따른 지분 매입은 눈길을 끈다. 고(故) 장병희·최기호 공동 창업주가 영풍그룹을 세운 후 현재 고려아연은 최 회장이, 전자 계열사는 장 고문이 이끌고 있다. 장 고문은 고려아연 기타비상무이사에 이름을 올리며 장 씨 측 인사로는 유일하게 고려아연 경영에도 참여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지분 투자를 결정하는 고려아연 이사회에서도 장 고문은 나홀로 불참했다. 최근 5년 여 간 장 고문이 이사회에 불참한 것은 이번 현대차그룹 투자유치 건 외에 지난해 8월 이뤄진 한화그룹 자금유치 뿐이다. 업계에서는 최윤범 회장이 현대차그룹을 우군으로 끌고 들어왔다고 보고 있다. 이렇게 되면 최 씨 일가 측이 보유한 고려아연 지분율이 처음으로 장 씨 일가 측 지분을 넘어서게 된다. 지난달 31일 고려아연이 현대차를 대상으로 결정한 유상증자가 완료되면 우호 지분을 포함한 최 회장 측 지분율은 총 28.58%에서 32.12%로 높아진다. 반면 장 고문 일가 측 지분율은 32.66%에서 31.02%로 낮아진다. 현대차그룹은 고려아연과 전기차 배터리 핵심소재 사업 제휴 업무협약(MOU)을 체결하며 고려아연의 지분 5%를 인수하기로 했다.
시장에선 장씨 일가와 최씨 일가의 계열분리 가능성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영풍그룹은 1949년 고(故) 장병희·최기호 창업주의 설립 이후 3대 째 '한 지붕 두 가족' 지배구조를 유지해왔다. 장 씨 일가 입장에선 고려아연의 계열분리를 계속 반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고려아연은 그룹 매출의 70% 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고려아연이 니켈 등 배터리 소재로의 사업 다각화에 속도를 내고 있어 시장에서 몸값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실제로 고려아연은 현대차그룹의 지분 투자를 발판으로 니켈 제련 사업에 더욱 투자를 확대하기로 했다.
고려아연은 지난달 30일 이사회를 열어 총 5063억 원 규모 니켈 제련사업 투자 계획을 승인했다. 투자금은 고려아연이 추진 중인 ‘올인원 니켈 제련소’ 건설에 활용된다. 이 제련소는 울산에 지어지고 있으며 연간 니켈 생산 능력은 4만2600톤이다. 황산니켈 생산 자회사 켐코까지 합치면 니켈 생산량은 연간 약 6만5000톤이 될 전망이다.
올인원 니켈 제련소가 완공되면 고려아연 그룹은 올해 기준 세계 2위의 황산니켈 생산능력을 보유하게 된다. 고려아연은 해당 제련소를 통해 황산니켈부터 황산코발트, 전구체와 니켈이 함유된 폐배터리까지 한 번에 처리하겠다는 계획이다. 세계 최고 품질과 최대 수준의 생산능력을 보유한 니켈 제련소를 통해 전기차 배터리 핵심소재인 니켈 밸류체인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김기혁 기자 coldmeta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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