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는 2017년부터 필리핀 가사도우미를 받아들였지만 정작 그 인력들은 육아나 개호(노인 돌봄) 등에 적극 활용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체류 자격상 가사 노동만 할 수 있는 데다 이용 요금이 높아 홍콩이나 싱가포르와 같은 ‘입주’ 방식 근무도 어려워 육아 도우미로도 맞지 않아요.”
아사토 와코(사진) 교토대 문화연구과 교수는 3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시행 7년 차를 맞은 일본의 ‘외국인 가사노동자 제도’에 대해 이같이 평가했다. 2000년부터 줄곧 이민 연구를 해온 아사토 교수는 저출산·고령화로 불거진 노동자들의 국제 이동과 결혼 이민, 사회 통합 등을 주로 파헤쳐왔다.
필리핀 가사도우미 도입은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1억 명 총활약 사회’를 내걸며 도쿄도 등 일부 국가전략특구를 무대로 추진한 제도다. 경력단절 여성을 최소화해 노동인구를 확보하겠다는 아베 전 총리의 구상은 가사 전반을 맡길 수 있는 노동력의 ‘수입’으로 이어졌다. 아사토 교수는 “일본에서도 남성이 일하고 여성은 집에서 가사와 육아를 전담하는 전통적 구조가 깨지면서 맞벌이 세대가 늘고 있다”며 “대신 가사 대행업체와 관련 시장이 계속 성장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가 당초 주목했던 부분도 여기에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이 노무라종합연구소를 통해 예측한 일본 가사 대행 서비스 시장 규모는 2017년 698억 엔에서 2025년 2000억 엔으로 8년 새 3배 가까이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가사 대행 서비스 제도만으로는 일본이 당면한 가사·육아 노동력 부족을 해소하기에 역부족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최저임금 등 노동자로서 갖춰야 할 법적 기준을 맞추다 보니 가격이 높아져 시장 자체가 좁아졌기 때문이다.
현재 일본에서 필리핀 가사도우미를 이용할 경우 요금은 1시간에 3500엔부터 5000엔까지다. 맞벌이 부부의 정규직 근무시간에 맞춰 가사도우미를 부른다면 월 최대 80만 엔까지 내야 한다. 일본 가정의 연 평균 소득(443만 엔)을 감안하면 부담이 큰 편이다. 게다가 이용료 대부분은 파견 업체가 떼어가는 탓에 노동력을 제공하는 가사도우미들은 시간당 1000엔 전후, 실수령액으로는 약 10만 엔을 손에 쥘 수 있다는 것이 아사토 교수의 설명이다. 이처럼 필리핀 가사도우미는 일본 정부가 당초 구상했던 대로 ‘저렴한’ 노동력과는 거리가 멀어졌다.
설령 제도가 도입되더라도 시행과 운영 역시 만만치 않다. 아사토 교수는 “일본 정부는 필리핀 가사도우미가 각 가정과 개별적으로 고용계약을 맺는 방식 대신 파견 회사에 고용된 상태에서 여러 가정에서 일하도록 시스템을 구축했다”며 “가사도우미를 고용한 회사들은 인력을 교육·관리·지원할 의무가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가사도우미를 고용한 회사가 필리핀 노동자에게 폭언이나 인종차별적 행위를 하는 일이 종종 벌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12월 도쿄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도쿄도 내 한 회사는 필리핀 가사도우미들에게 인권을 침해하는 계약서를 들이밀어 문제가 됐다. 해당 계약서에는 △남자친구 등 파트너를 만들지 않는다 △3년의 고용계약을 지키지 못하면 알선 과정에서 발생한 비용을 모두 피고용인이 부담한다는 내용 등이 포함돼 있었다. 또 이 회사는 피고용인의 여권을 가져간 뒤 돌려주지 않기도 했다.
이에 대해 아사토 교수는 “이런 일이 공론화돼도 감독 책임이 있는 내각부와 특구는 ‘문제는 있지만 위법은 아니다’라며 묻고 가려 한다”면서 “필리핀 가사도우미가 어려움을 호소하려 해도 정부의 접수 기관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만 운영돼 제보나 상담 자체가 불가능한 구조다. 제3의 기관이 대응할 필요가 있다”며 관리 사각지대를 꼬집었다.
아사토 교수는 “일본은 물론 한국·대만·홍콩·싱가포르 등 아시아 여러 국가들 모두 저출산·고령화를 겪고 있는 만큼 서로 경쟁적인 위치에서 노동력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인력을 보내왔던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 등도 점차 저출산으로 가는 추세이기에 현재 자국에서 일하고 있는 이들을 잘 활용해야만 노동력 급감 현상에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일본 정부는 빠르면 다음 달 ‘외국인 가사노동자’ 비자로 체류하는 필리핀 가사도우미를 대상으로 비자 기한을 현행 5년에서 7년으로 재연장할 방침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