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이초 사망 교사의 49재일을 기리는 ‘공교육 멈춤(정상화)의 날’인 4일 교사 10만 명이 학교 대신 거리로 쏟아졌다. 교육 당국이 교사들의 집단 파업을 불법행위로 규정하고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겠다고 엄포를 놓았지만 전체 교원(50만 명) 중 5분의 1이 전국 각지에서 교권 회복을 외쳤다. 징계를 각오한 상당수 교사들이 병가·연가를 내고 이번 집회에 힘을 실어줬지만 많은 교사들이 집회에 참여하면서 일선 학교에서는 수업 파행이 빚어졌다. 교육 당국의 엄벌 방침 고수에 교사 징계 등 적잖은 후폭풍도 우려된다.
이번 집회를 주최하는 ‘한마음으로함께하는모두’라는 이름의 교사 모임에 따르면 이날 오후 4시30분부터 진행된 국회 앞 집회에 교사 3만여 명이, 같은 시간 전국에서 열리는 지역별 집회에 7만여 명이 모였다.
과거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연가 투쟁을 벌인 적은 있지만 특정 노조나 단체 주도 없이 전국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우회 파업’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교육부의 강경 대응 방침이 교사들의 분노를 자극했고, 이날 교장 출신의 제주도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이 숨진 것을 포함해 최근 잇따라 교사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소식까지 들리면서 집회 확산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교육계에 따르면 이날 전국 곳곳에서 교사들이 병가나 연가를 활용해 학교로 출근하지 않거나 학교 차원에서 재량 휴업을 진행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이날 오후 1시 기준 임시 휴업한 학교는 37곳이다. 이달 1일 발표한 30곳보다 7곳 늘었다. 재량 휴업 학교는 전국 초등학교(6286개교)의 0.6%에 불과하지만 교사들의 ‘병가·연가 러시’에 집회 참여 인원은 전체 교원의 5분의 1에 이르렀다. 실제 서울 성북구의 A학교는 교사 약 60명 중 40명이 병가와 연가를 냈으며 같은 지역 B학교도 교사 약 60명 중 30명이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교사들 무더기 결근에 합반, 학년 통합 수업이나 단축 수업, 대체 프로그램을 운영한 학교들이 속출했다.
교사들의 교권 회복 외침에 교육 당국은 물론 윤석열 대통령도 교사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이날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강당에서 서울시교육청 주최로 열린 추모제에 참석해 “현장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교육 전반을 면밀하게 살펴보겠다”고 약속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도 추도사에서 “학교와 선생님 없이는 우리 사회의 미래도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종종 잊었다. 소중한 교훈을 고인을 떠나보낸 뒤에야 깨우쳤다. 부끄러운 마음으로 깊이 반성한다”고 말했다. 교원 단체도 잇따라 애도 메시지를 발표하고 제도 개선을 위해 힘을 모으겠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도 이날 “지난 주말 현장 교사들이 외친 목소리를 깊이 새겨 교권 확립과 교육 현장 정상화에 만전을 기하라”고 지시했다.
다만 교육 당국이 엄벌 방침을 고수하고 있어 집회 이후 적잖은 혼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교육부 관계자는 “오늘은 추모가 이뤄지는 날로 (징계에 대해서는) 지금 말할 단계가 아니다”라며 “교사들의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고 주말(집회) 참가자 수가 늘고 있지만 교육부 원칙이 바뀌었다고 말하지 못한다”고 했다.
한편 교육부는 이날 교권 회복 후속 조치로 교직원들에게 전화를 걸면 배려를 강조하고 통화 녹음이 될 수 있다고 안내하는 내용의 통화연결음을 마련해 전국 학교에 배포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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