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수준 높은 미술품 컬렉터가 계속해서 늘고 있다. 앞으로도 갤러리 운영에 한국 시장은 무척 중요하다.”
지난 9일 폐막한 프리즈(Frieze) 2023에 참가한 한 일본 대형 갤러리 대표의 말이다. 그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와서 놀랐고, 앞으로도 시장이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미술 시장이 1년 사이에 반토막 난 조정기에 열린 두 번째 프리즈서울이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내며 막을 내렸다. 지난해 화제가 된 ‘첫 날 완판’, ‘100억 매출’ 등의 소식은 전해지지 않았다. 나흘 간 행사장을 방문한 관람객 수도 지난해와 비슷한 7만 명 수준으로 집계됐다. 세계적인 갤러리들은 1년 사이 한국 시장에 완벽히 적응해 전시 작품의 가격대를 낮추는 대신 ‘볼만한 전시’로 승부했다. 초대형 작품은 없었지만 많은 부스에서 수십억 원 대의 작품이 속속 팔리며 아시아 미술 시장의 중심이 될 서울의 잠재력을 보여줬다.
조정기 시장서도 기대 이상의 성과…하루에 수백 억 오갔다
지난해 개막 첫 날 VIP 사전관람의 주인공이 ‘하우저&워스’였다면 올해는 ‘데이비드즈워너’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데이비드즈워너는 뉴욕에만 네 곳의 지점을 둔 글로벌 메가 갤러리다. 올해 데이비드즈워너는 쿠사마 야요이, 캐서린 베른하르트 등 스타 작가의 작품을 내걸었는데 첫 날 77억 상당의 쿠사마 야요이의 회화 작품 ‘붉은 신의 호박’이 판매되며 화제를 모았다. 하우저앤워스도 지난해 만큼은 아니지만 높은 성과를 냈다. 개막 첫 날 래쉬드 존슨의 회화 작품을 비롯해 개막 첫 날만 약 13점의 작품을 팔아 치우며 저력을 과시했다. 글래드스톤 역시 라우센버그의 ‘오프 시즌’을 95만 달러(12억 6000만 원)에 판매한 데 이어 알렉스 카츠와 데이비드 살레의 회화 등을 팔며 만족스러운 결과를 냈다. 대형 갤러리에서 작품을 사간 곳은 국내 기관과 미술관 등인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19 격리가 해제되고 해외로 쏟아져 나오고 있는 수많은 중국인 관광객들이 눈에 띄었다. 타데우스로팍의 설립자 타데우스 로팍은 “지난해에 비해 프리즈 서울이 한 단계 성장한 모습을 보여 무척 흥미롭다”며 “아시아 전역에서 많은 컬렉터들이 방문했다”고 말했다.
수준 높은 미술관·늘어나는 아트 컬렉터…한국 시장은 계속 성장 중
올해 두 번째 프리즈 서울에 참가한 글로벌 초대형 갤러리들은 대체로 한국 미술 시장의 수준을 높게 평가했다. 이학준 크리스티 코리아 대표는 “우리나라에서 10억 원 이상의 금융자산을 가진 부자들 중 미술품 수집을 하는 사람들은 2%에 불과하다”며 “글로벌 경매사들은 나머지 98%를 잠재적인 고객으로 보고 한국 시장 진출을 점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부터 프리즈서울이 열리면서 잠재 고객군 중 상당수가 미술품 컬렉팅에 뛰어들고 있다. 이건희 컬렉션이 성공하면서 많은 기업인들이 미술품 수집이 기업 이미지 재고에 긍정적이라는 점을 깨달은 덕분이다. 일레인 곽 하우저앤워스 아시아지역 총괄 매니저는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사립 미술관이 많고 전시와 연구 수준이 무척 높다”며 “이런 기관이 한국 컬렉터들의 미술 지식 수준을 높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잠재 고객군이 높은 미술 지식으로 중무장한다면 고가의 북미·유럽 작품을 살 ‘큰 손’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올해도 화이트큐브 등 많은 글로벌 대형 갤러리들이 서울에 지점을 내고 있다. 이는 오랜 시간 아시아 미술품 거래의 수도였던 홍콩과 서울을 가장 차별화할 수 있는 요인이기도 하다. 홍콩은 면세 혜택 등이 있어 미술품 수집을 하기에 무척 유리한 도시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성장할 만한 신진 작가는 한국에 더 많다.
해외 갤러리와 뮤지엄 등은 장차 한국 미술 시장이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아트 컬렉터와 미술관 전시의 수준 등 두 가지가 모두 함께 커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이먼 폭스 프리즈 CEO는 “서울의 주요 갤러리나 미술관의 작품 수준, 정부의 지원이나 공공 미술 등의 분야에서 아시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며 “전세계에 있는 큐레이터들이 한국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이런 것들이 유기적으로 합쳐져 한국 미술 시장을 성장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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