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고물가·인력난 등 복합 경제 위기 탓에 일시적으로 유동성 위기에 몰린 중소기업의 재기를 위해 새로운 구조 조정 제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현행 채권자 주도의 워크아웃 제도나 법원의 회생절차 등 기존의 기업 구조 조정 제도가 중소기업 재기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업계와 학계는 우선 10월 일몰 기한이 도래하는 ‘기업구조조정 촉진법(워크아웃 제도)’을 연장하고 단계적으로 법을 개선해 제3자 기관이 주도하는 ‘중소기업 맞춤형 사적 구조 조정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상반기 파산신청 724건 역대최대…고금리 속 중기 신용위험 높아져
중소기업중앙회와 중소벤처기업정책학회가 11일 서울 여의도 중기중앙회에서 개최한 ‘중소기업 구조 개선 촉진을 위한 토론회’에서 이 같은 목소리들이 나왔다.
장기간 이어지고 있는 복합 경제 위기로 중소기업의 신용 위험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올 상반기 법인 파산 신청은 724건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60.2% 늘어나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또 부실 징후 기업을 선별하기 위해 매년 채권 은행이 진행하는 정기 신용 위험 평가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부실 징후 기업으로 선정된 중소기업은 183개사로 전년 157개사에 비해 1년 동안 26개사나 늘었다. 이런 상황에서 20여 년간 지속됐던 채권 금융기관 중심의 사적 구조 조정 제도인 워크아웃 제도는 10월 일몰을 앞두고 있다. 벼랑 끝에 몰리는 중소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는 만큼 구조 조정 제도의 역할과 업그레이드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실제 김이배 덕성여대 교수는 이날 토론회에서 “워크아웃은 주로 신용평가 등급 C등급, 회생은 D등급인 기업이 이용하고 있지만 요즘 같은 고금리 시대에는 경쟁력 있는 기업이라도 일시적 유동성 제약으로 재무구조가 악화될 수 있다”며 “부실이 심화되기 전에 선제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절차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행 제도, 중기서 활용 어렵거나 낙인효과로 사업가치 훼손 우려
주제 발표에 나선 최수정 중소벤처기업연구권 연구위원은 현재 적용되고 있는 우리나라 기업 구조 조정 제도의 한계를 지적하며 사적 구조 조정 절차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 연구위원은 “워크아웃 제도는 중소기업이 활용하기 어렵고 기업이 아닌 이해관계가 다를 수 있는 채권 금융기관이 주도하다 보니 공정성 또는 중립성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있다”며 “법원이 주도하는 회생절차는 공개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낙인 효과가 발생해 기업의 사업 가치가 훼손되고 거래가 단절되는 악영향이 있어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안기동 유넷시스템 대표는 “매출 100억 원에 직원도 100명이 넘는 한 정보기술(IT) 중소기업이 해외 진출 성과 부진으로 자체적으로 구조 조정에 나서자 금융권은 곧장 대출 회수에 나섰고 법원 회생 과정을 통해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거래처는 납품 중단을 알려왔다”며 “이런 일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기업의 상황이 거래처에 공개되지 않으면서 기업의 재기를 도울 수 있는 제도나 기관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했다.
'日 중기 맞춤형 제도' 대안 제시…"워크아웃 일몰 연장" 목소리도
이날 토론회에서는 일본의 ‘중소기업활성화협의회’와 비슷한 형태인 제3자 기관이 주도하는 사적 정리 절차 제도가 대안으로 제시됐다. 일본의 중소기업활성화협의회는 일본의 제3자 기관이 주도하는 여러 사적 정리 절차 중 하나다. 기업의 회생을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지원한다는 평가를 받는 공공기관이다. 수익성은 있지만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의 활성화를 지원하기 위해 산업경쟁력강화법에 근거해 2003년 설립된 ‘중소기업재생지원협의회’가 ‘경영개선지원센터’와 통합되면서 확대 개편됐다. 이곳에서는 중소기업의 재생 및 사업 개선을 위한 은행과 회계사 출신의 전문가 조언, 재생 계획 수립, 이행 사항 모니터링 등 재기 의지를 가진 중소기업을 전방위적·체계적으로 지원한다. 최 연구위원은 “이 제도가 일본에서 활용성이 높은 것은 제3자의 중립적인 입장에서 채무 조정과 중소기업 재생 계획이 원활히 진행될 수 있도록 지원하기 때문”이라며 “특히 채권 금융기관과 협의회를 제외한 거래처 등에는 채무 조정 등의 내용이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브랜드 가치 하락을 막고 기업이 거래를 지속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 연구위원은 이어 “국내에도 사적 구조 조정 제도의 장점에 공정성과 중립성까지 더할 수 있는 ‘제3자 기관형 중소기업 맞춤형 절차’를 도입해 기업의 상황에 맞게 다양한 방식의 구조 개선 제도를 선택할 수 있는 멀티도어(multi-door)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며 “회생절차와 워크아웃에 대한 진입 부담으로 인해 시기를 놓쳐 파산으로 가기 전에 선제적으로 회생을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추문갑 중기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도 “국내 자율 협약이나 워크아웃은 채권자 주도로 이뤄지는 경향이 있다”며 “기업의 성장보다 원리금 보전에 관심이 있는 채권자는 채무자 기업과 다른 방향으로 판단할 수 있는 만큼 채무자와 채권자의 입장을 공정하게 고려할 수 있는 제3자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구조 조정 제도 개선과 함께 10월에 끝나는 기촉법 일몰 연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워크아웃 제도는 20여 년간 지속돼왔으며 다음 달 15일 만료될 예정이다. 현재 국회에 일몰 연장에 대한 법안이 발의된 상태지만 아직 논의가 진행되지는 않고 있다. 김윤정 법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제3자 구조 조정 제도가 필요하지만 이러한 제도가 도입되기 전 워크아웃 제도가 일몰되면 결국 하나의 기회가 줄어드는 상황”이라며 “우선 워크아웃 제도 일몰을 연장하고 그 이후 다양한 구조 조정 제도 개선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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