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4일 아르헨티나중앙은행이 페소화 공식 환율을 달러 대비 350페소로 22.5% 인상했다. 지난해 초 이후 달러 대비 페소화 환율 상승 폭은 240.7%에 이른다. 페소화의 구매력이 2년도 안 돼 70%나 평가 절하된 것이다. 게다가 올 7월 아르헨티나의 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113%를 기록했다. 페소화 가치가 급락하는데도 정부가 외환 거래를 규제하자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외환 암시장 즉 ‘블루 마켓’으로 몰리고 있다. 이곳에서 거래되는 ‘블루 달러’ 환율은 현재 달러당 730~750페소 정도로 공식 환율의 2배 이상이다. 불법성이 약하다는 이유로 ‘블랙’이 아닌 ‘블루’라는 이름이 붙었다.
‘블루 달러’는 아르헨티나의 경제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올해 아르헨티나 경제성장률은 -2.2%를 기록하고 재정 적자 규모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4% 안팎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르헨티나중앙은행은 물가 상승을 막고 시중 달러 자금을 제도권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최근 기준금리를 21년 만에 최고치인 118%까지 올렸다. 하지만 페소화 가치가 내년에는 달러당 590페소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돼 기준금리 인상이 효과를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최대 문제는 정치 리더십 부재다. 1946년 후안 도밍고 페론 대통령 집권 이후 국민들이 포퓰리즘에 익숙해지면서 구조 개혁을 내세운 정권들은 번번이 선거에서 패배했다. 최근에는 극우 성향의 하비에르 밀레이 하원의원이 대선 예비 선거에서 1위를 차지하면서 국제 금융시장이 긴장하고 있다. 그는 페소화 폐지, 중앙은행 폭파, 장기 밀매 합법화 등 극단적인 정책을 선거 공약으로 내걸었다. 아르헨티나는 과거 국가 부도 선언을 아홉 차례나 했을 정도로 신흥국 중 가장 약한 고리 중 하나다. 밀레이가 다음 달 22일 본선에서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아르헨티나의 외환시장 변동성이 커지면서 튀르키예·이집트·남아공 등 다른 취약국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아르헨티나발 신흥국 금융 불안 가능성을 예의주시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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