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창업자들은 창업 첫날(Day One)부터 글로벌 마인드셋을 갖고 있습니다. 한국도 이스라엘과 비슷한 저력이 있습니다. 다만 필요한 건 실패를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입니다.” (마크 서스터 업프론트벤처스 대표)
“이민자이기 때문에 처음 겪는 불편함이 모두 사업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불편하고 일반 상식이 통하지 않을 때 그 부분을 곧 기회로 보세요.” (정세주 눔 창업자 겸 의장)
15일(현지 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공항 바로 옆에 위치한 그랜드하이엇호텔. 이날 오후 한국투자공사(KIC)와 주샌프란시스코총영사관이 주최한 ‘테크 인베스트먼트 아웃룩’ 포럼이 열리는 2층에 들어서자 비행기들이 이륙을 준비하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는 통창을 배경으로 100여 명이 넘는 참가자들이 바쁘게 오갔다. 저마다 멀게는 한국을 비롯해 뉴욕·로스앤젤레스 등에서 온 이들이었다.
이날 ‘향후 10년의 투자 방향’을 주제로 미국 로스앤젤레스 최대 벤처캐피털(VC)인 업프론트벤처스의 마크 서스터 대표를 비롯해 실리콘밸리 대표 VC NEA의 릭 양 파트너, 제너럴캐털리스트의 홀리 멀로니 총괄 등이 열띤 토론을 했다. 윤송이 엔씨소프트 최고전략책임자(CSO) 겸 VC 카멜레온 대표도 대담을 나눴다.
가장 관심을 모은 건 인공지능(AI) 분야의 성장 가능성이었다. 윤 CSO는 “AI가 산업을 새롭게 재편하는 차세대 범용기술(General Purpose Technology)이 될 것은 분명하다”며 “지금 나스닥에 상장된 100대 기업 중 대부분이 통신 네트워크가 구축된 후 만들어진 ‘디지털 네이티브’ 업체인데 앞으로 AI 인프라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AI 네이티브 기업’들이 이를 대체할 것으로 본다”고 짚었다.
서스터 대표는 “‘미래는 이미 도착했지만 균등하게 분배되지 않았을 뿐이다’는 말에 깊이 공감한다”며 “피할 수 없는 선택이지만 AI·자동화 기술을 쓰지 않는다면 다른 업체와의 경쟁에서 도태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 파트너는 “향후 AI는 사람마다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정교하게 진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향후 10년간 기대되는 투자 포트폴리오를 골라달라는 질문에는 헬스케어 스타트업들이 여럿 언급됐다. 서스터 대표는 마이크로 스케일로 인체 장기 구석구석까지 들어가 병을 진단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 바이오넛(Bionauts)을 꼽았다. 윤 대표는 여성을 위한 원격의료 스타트업 알파(Alpha)를 꼽으며 “많은 워킹맘들을 비롯해 모든 여성이 쉽게 병원 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다”며 “테크를 통해 사회의 큰 문제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날 KIC가 주도한 포럼에 굴지의 실리콘밸리 VC들이 참석한 데는 미국 벤처투자 업계에서 한국 시장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흐름을 보여준다. 행사 말미에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사학 연금을 운영하는 성창훈 씨가 “한국 스타트업 투자에 있어서 허들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첫 번째는 글로벌 마인드셋이 꼽혔다. 서스터 대표는 “한국에서만 사업을 하는 스타트업에 투자할 의향은 없다”며 글로벌 마인드셋을 가질 것을 조언했다. 그는 “한국 시장에 대해 관심도가 높고 전체 직원의 15%가 한국계일 정도지만 한국에서의 사업에 대해서는 로컬 VC들보다 잘 알 수도 없고 리스크가 크다”고 전했다. 두 번째로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세가 꼽혔다. 서스터 대표는 “이스라엘은 시장 규모나 지정학적인 상황을 고려할 때 해외 진출이 유일한 대안이라는 점은 한국과 동일하지만 한국 사회가 다른 점은 실패에 대해 받아들일 자세가 돼 있지 않다는 점”이라며 “큰 기업을 이루는 창업자들도 첫 번째, 두 번째 스타트업은 실패할 수 있다. 실패로부터 배우는 마음가짐을 높게 산다”고 전했다.
이날 오전에는 같은 장소에서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최하고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와 코리아이노베이션센터(KIC) 실리콘밸리가 주관하는 ‘K글로벌@실리콘밸리’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남호 알토스벤처스 공동대표는 “삼성과 현대 창업자들의 DNA가 지금의 스타트업 창업자들에게 있다”며 “앞으로 한국의 성장 동력은 스타트업에 있다”고 강조했다.
헬스케어 스타트업 ‘눔’을 기업가치 5조 원으로 키워낸 정세주 창업자도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이민자였던 게 오히려 큰 기업을 만드는 기회로 작용했다”며 “이민자이기 때문에 처음 겪는 불편함과 일반 상식이 맞지 않는 부분이 모두 사업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윤규 과기정통부 2차관은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경제 환경에 맞춰 시야를 더욱 세계로 넓히는 것이 중요하다”며 기업 간 경쟁을 넘어 글로벌 파트너들과 함께 세계시장을 더 키워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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