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랜드 광명(옛 소하리 공장)을 전기차 공장으로 전환 중인 기아(000270)가 110억 원의 ‘개발제한구역 보전부담금’을 낸다. 국토교통부가 미래차 육성을 위해 오토랜드 광명의 부담금을 깎아 달라는 광명시의 요청을 거절했기 때문이다. 전 세계 주요 국가들이 전기차 패권을 쥐기 위해 파격적인 세제 혜택과 보조금 지급에 나서는 것과 달리 국내에서는 해묵은 규제가 미래차 투자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8일 정부와 업계에 따르면 국토부는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지정 이전에 허가 받은 공장에 한해 건축물 증축 시 보전부담금 부과율을 현행 50%에서 25%로 감면해 달라는 광명시의 요청에 대해 “불가능하다”고 결론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국토부는 그린벨트 내 다른 건축물과의 형평성과 향후 불거질 특혜 시비 등을 고려해 반대 입장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기아가 내야 할 그린벨트 보전부담금이 110억 원(업계 추산)으로 확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옛 소하리 공장인 오토랜드 광명은 1970년 공장 설립 허가를 받아 착공했지만 이듬해인 1971년 도시계획법이 개정되면서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였다. 기아는 총 4000억 원을 투입해 기존 2공장을 전기차 라인으로 전환해 내년 6월부터 EV3·EV4 등 신형 전기차를 내놓을 예정이다. 하지만 52년 전의 대못 규제 탓에 시작부터 100억 원이 넘는 부담금 폭탄을 안게 됐다.
앞으로가 더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전기차 생산량을 늘리려면 공장 증축이 불가피한데 현 규제 아래에서는 부담금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어서다. 그린벨트로 지정된 공장은 기존 면적에서 늘어난 면적에 대해 부과율(50%)을 곱해 보전부담금을 산정하기 때문이다. 공장을 증축할수록 투자 비용뿐만 아니라 부담금 규모도 커지는 구조다. 기아도 오토랜드 광명의 전기차 라인을 최초 설계할 때 부담금이 1000억 원 가까이 늘어나자 기존 공장 골조를 유지하며 증축 면적을 최소화하는 쪽으로 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부담금 문제가 없었다면 기아 입장에서는 공장 부지를 최대한 활용해 더 넓고 큰 전기차 공장을 지었을 것”이라며 “글로벌 완성차 업계의 전동화 속도가 빨라지며 기업의 발 빠른 대응이 중요한 상황인데 불합리한 규제가 기업의 투자 의욕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첨단지구 불구 稅혜택 빠져…겹규제에 '전동화 삼각벨트' 삐걱
기아 오토랜드 광명은 오토랜드 화성(기아), 울산 전기차 공장(현대차)과 함께 현대차 그룹의 국내 전기차 생산을 위한 3대 거점에 해당한다. 2030년 연간 364만 대의 전기차를 생산해 글로벌 판매 톱3를 달성한다는 목표를 실천하려면 이 삼각벨트가 ‘톱니바퀴’처럼 맞아 돌아가야 한다. 현대차그룹은 연간 글로벌 생산량의 41%(151만 대)를 국내에서 생산할 계획이다.
하지만 국내 전동화 전환의 삼각벨트 가운데 하나인 오토랜드 광명이 벌써부터 겹규제에 둘러싸여 흔들리고 있다. 그린벨트 규제로 110억 원의 보전부담금이 사실상 확정됐고 수도권 과밀억제권역에 따른 법인세 공제 혜택도 받지 못한다. 최근 정부가 지정한 ‘첨단투자지구’의 경우 핵심인 세제 혜택이 빠져 ‘속 빈 강정’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오토랜드 광명은 1971년부터 52년간 그린벨트로 묶여 있다. 1970년 공장을 짓기 위한 첫 삽을 뜰 때만 해도 이러한 규제가 없었지만 이듬해 법 개정이 이뤄지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이로 인해 회사가 생산 차종 및 생산량 확대를 위해 공장 증축이나 설비 확충 등을 진행할 때 투자 비용과 별개로 보전부담금을 추가로 내야 하는 상황이 반복돼왔다.
이에 광명시는 부담금을 낮춰 달라고 요구했지만 ‘형평성’을 앞세운 국토부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그린벨트 내 여러 건축물이 있는데 공장 부담금 부과율만 낮출 경우 다른 건축물과의 형평성에 어긋날 수 있다”며 “현재 부과율은 추가적인 완화를 검토할 만큼 과도하게 높은 수준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미 2013년 박근혜 정부 당시 그린벨트 내 공장 증축에 한해 보전부담금을 100%에서 50%로 대폭 낮춘 바 있어 추가적인 조치가 필요하지 않다는 얘기다.
문제는 이 같은 경직된 규제 적용이 기업의 투자 의욕을 꺾을 수 있다는 점이다. 향후 전기차 생산이 늘어날 경우 추가적인 공장 증축이나 설비 확충이 필요한데 그때마다 투자금과 별개로 보전부담금을 따져야 하는 탓이다. 실제 기아는 공장 부지를 최대한 활용해 전기차 라인을 지으려다가 부담금 규모가 1000억 가까이 불어날 것으로 예상되자 리모델링 방식으로 선회했다. 현행 그린벨트 보전부담금은 기존 부지 대비 면적이 1㎡만 늘어나도 부과된다. 이 때문에 기아는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2공장의 건물 골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증축하는 방식을 택했다. 기존 공장에 수천억 원의 비용을 들여 전동화 전환을 하면서도 부담금을 반납해야 하는 역설적인 상황에 놓이면서 오히려 투자 규모가 위축되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개발제한구역 부담금 규제가 완화됐다면 전기차 시장의 주도권을 쥐려는 현대차 그룹이 더욱 공격적으로 투자에 나설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업계는 중장기적인 전기차 공급에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기아의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 목표는 올해 25만 8000대에서 2030년 160만 대까지 늘어난다. 2030년에는 한국에서만 23만 3000대를 팔 계획이다. 하지만 오토랜드 화성(15만 대)과 광명(10만 대)의 연간 전기차 생산량은 25만 대에 그친다. 이 가운데 일부는 해외로 수출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국내 공급량은 목표 판매량보다 더 낮아질 수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장 생산라인을 더 늘려야 하지만 국내 규제에 가로막힌 상황이다.
설상가상으로 이 지역은 수도권 과밀억제권역에 해당돼 세 부담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에 따라 전기차 공장에 투자하는 기업은 올해에 한해 최대 35%(대기업은 25%)의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과밀억제권역은 세제 혜택에서 제외된다. 오히려 공장을 신설하거나 증축할 경우 취득·등록세 중과세율을 적용받아 세 부담이 올라간다.
첨단투자지구 지정에 따른 정부 지원도 제로에 가깝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달 8일 기아 오토랜드 광명 공장, 현대차 울산 전기차 공장을 포함한 전국 9곳을 첨단투자지구로 지정했다. 이 제도의 근거 법인 ‘산업집적활성화 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첨단투자지구는 조세에 관한 법률로 각종 세제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산업부는 첨단투자지구 입주 기업에 대해 법인세와 지방세(취득·등록세 및 재산세) 감면을 추진했지만 기획재정부와 행정안전부 등 관계 부처의 이견으로 세제 지원 방안을 담지 못했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미래 먹거리인 전기차 산업을 두고 다양한 정부 부처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면서 규제 개선이 지체되고 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한 타이밍을 놓치고 있다”며 “대통령 직속의 장관급 별도 조직을 신설해 관계 부처를 조율하고 빠른 속도로 규제를 해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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