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산하 자문 기구인 이민정책위원회의 위원인 김동욱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가 “일본은 고숙련 외국인 노동자의 이직까지 허용하는 등 이민정책을 전향적으로 전환하고 있다”며 “그 결과 한국의 우수 인재들이 일본으로 빠져나가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젊고 유능한 외국인 근로자가 한국에 자리 잡고 살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0일 김 교수는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서울경제 미래컨퍼런스 2023’에서 한국이 일본에 인재를 빼앗기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일본은 한국의 외국인 고용허가제를 배워갈 정도로 우리보다 이민정책에 뒤졌던 국가”라며 “하지만 2019년 이민정책의 방향을 변경해 외국인 노동자가 일본에 오랫동안 머물도록 제도를 개선했다”고 짚었다.
우리가 참조할 만한 제도로 ‘특정기능 1호 비자’도 소개했다. 이 비자는 특정 분야에 대한 상당한 지식과 경험이 있는 외국인 인력에게 발급되는 것으로 비자를 취득한 사람은 일본에 체류하며 이직까지 할 수 있다. 외국인 근로자의 이직을 불허하는 우리와는 대비되는 대목이다. 김 교수는 “특정기능 1호 비자가 신설된 시기가 2019년 4월”이라며 “조선·산업기계·항공 등 일손이 부족한 12개 산업 분야에 대해서는 외국 인력에 장기간 체류 자격을 부여해 외국인 근로자가 일본에서 오래 머물며 일자리를 선택할 수 있는 폭을 한층 넓혀줬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전향적 정책의 효과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일본 출입국재류관리청에 따르면 일본의 특정기능 1호 비자 취득자 수는 2019년 1621명에서 지난해 13만 915명으로 급증했다. 일본에 장기간 머무는 고숙련 외국 인력이 많아지고 있다는 의미다. 한국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계속 한국에 머무는 외국인 비중이 2016년 39.1%에서 2021년 29.8%로 줄어든 것과 반대되는 흐름이라고 볼 수 있다.
심지어 한국의 고급 인재가 일본으로 유출되는 상황마저 나타나고 있다는 게 김 교수의 진단이다. 두뇌 유출의 통로로는 일본 정부가 연구직·기술직·경영직에 종사하는 고학력·고숙련 외국인에 발급하는 ‘고도인재비자’가 지목됐다. 그는 “지난해 일본에서 고도인재비자를 얻은 외국인 3만 8014명의 국적을 보니 한국이 중국과 인도 다음으로 많았다”며 “일본으로 우리의 우수 인력이 빠져나가고 있다는 뜻”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우수한 외국인 인재를 유치하는 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가적 과제”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고급 인력 유치에 타깃을 둔 이민정책 설계가 우선”이라며 “향후 이민정책은 점수제를 기본으로 정립하되 젊고 고학력에 고숙련일수록 가점을 주는 방식이 적절하다”고 제안했다. 점수제란 기술 능력과 한국 체류 기간, 한국어 능력 등 자질에 대한 점수를 매겨 총합이 일정 기준을 넘으면 이민을 허용하는 체제를 말한다. 일례로 캐나다는 이민자의 나이, 교육 수준, 영어 능력을 평가해 필요 인력 위주로 외국 인력을 수용하는 점수제를 운용하고 있다. 그 덕에 고숙련 엔지니어의 41%, 창업가의 33%가 이민자일 정도로 전문직 외국 인력 수용이 활발하다. 김 교수는 이어 “여기에 가족들도 같이 한국에 머물 수 있도록 허용하면 정책 효과가 더 커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민청을 설립해 이들의 정주 환경을 보다 체계적으로 조성해줘야 한다는 조언도 뒤따랐다. 현재 외국인의 입출국과 체류를 관리하는 ‘법무부 출입국외국인 정책본부’ 체제를 넘어서 외국인이 정착해서 살아가고 사회에 통합되며 이들의 권리를 두텁게 보장하는 것을 전담할 기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중장기적으로는 이런 정책을 안정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기금도 신설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민청이 관리하게 될 이른바 ‘이민 지원 기금’은 비자·출입국 수수료, 외국 인력 고용주가 낼 부담금 등의 수입으로 조성될 수 있다”며 “이민청과 고용노동부·농림축산식품부 등 각 부처의 외국인 지원 사업을 안정적으로 뒷받침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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