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부터 환자의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수술을 하는 의료기관의 수술실 내부에 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안이 시행된다. 환자나 보호자가 요청할 경우 수술 장면을 촬영해야 하고 촬영된 영상은 범죄 수사나 재판, 의료 분쟁 조정 절차에 사용될 수 있다. 대리 수술 등 수술실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법행위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다. 하지만 제도 시행을 사흘 남겨두고도 의료계와 환자 단체가 끊임없이 충돌하고 있어 안착까지 시일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22일 정부와 의료계에 따르면 개정 의료법은 전신마취 등으로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수술을 받는 환자는 병원에 CCTV 촬영을 요구할 수 있다. 정당한 이유 없이 거부하면 병원은 500만 원의 벌금을 내야 한다. 다만 환자가 직접 CCTV 촬영을 의료진에게 신청하고 수술에 참여하는 의료진의 동의가 필요하다. 수술 장면이 촬영됐더라도 실제 열람을 하려면 별도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환자 단체는 CCTV 촬영 거부가 가능한 예외 조항이 많아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실제 예외 조항을 고려하면 전공의(레지던트·인턴) 수련을 담당하는 대학병원이나 응급·고난도 수술 비중이 높은 대형 병원들은 상대적으로 제도 시행 여파가 적을 것이라는 게 의료계 안팎의 중론이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이달 초 성명에서 “CCTV 영상이 유령 수술 등 무자격자의 대리 수술, 성범죄, 비윤리적 행위 여부 등을 판단하고 수술 중 발생한 의료 사고의 진실 규명을 위한 중요한 증거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보관 기간을 촬영일로부터 60~90일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환자가 사망한 경우 장례를 치르는 기간과 더불어 의료 행위의 은밀성·전문성으로 인해 환자나 보호자가 의료 사고 여부를 판단하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현행 30일은 짧다는 것이다. 이들은 “의료진에 수술 촬영을 요청하면 자칫 치료상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신청을 주저하는 환자들도 많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의료계는 의료계대로 불만이 많다. 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병원협회는 이달 초 수술실 CCTV 설치를 의무화하는 의료법 개정 조항이 의료인의 인격권 등을 침해한다며 헌법재판소에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서 및 헌법 소원 심판 청구서를 제출했다. 수술실 CCTV가 설치 및 운영되면 의사 등 수술에 참여하는 의료인에 대한 민감한 개인정보 유출, 직업 수행의 자유, 초상권 등 헌법상 기본권 침해가 우려된다는 논리다. 두 단체는 “수술실 CCTV 설치를 법으로 의무화하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라며 “의사의 원활한 진료 행위가 위축돼 최선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상당한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의사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해 의사와 환자의 신뢰 관계가 심각하게 훼손될 뿐 아니라 상시 감시 상태에 놓인 의료진에게 집중력 저하와 과도한 긴장을 유발해 수술 환경이 악화하고 방어 진료를 하게 돼 피해가 고스란히 환자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입장이다. 환자들의 민감한 정보가 녹화될 경우 인격권,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가 침해되고 해킹 범죄에 의해 수술받는 환자의 신체 모습 등이 외부로 유출될 가능성도 제기했다.
국회는 2021년 8월 전신마취 등 환자가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수술을 시행하는 모든 의료기관의 수술실 내부에 CCTV를 반드시 설치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의료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해당 법안은 2016년 안면 윤곽 수술을 받던 도중 과다 출혈이 발생해 50일 가까이 중환자실에 입원했다가 끝내 사망한 고(故) 권대희 씨 사건을 계기로 촉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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