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상거래(이커머스) 업체 11번가가 투자자들에게 약속한 자금회수 시한을 넘길 가능성이 커지면서 1000만 명이 넘는 고객 정보를 보유한 11번가가 헐값에 중국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1번가의 모회사인 SK스퀘어(402340)는 여러 곳과 협상 중이라는 입장이지만 결국 중국 쪽에 회사가 넘어가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22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SK스퀘어는 알리바바그룹과 PDD홀딩스 등 중국 대형 이커머스 기업들과 11번가 매각 논의를 진행 중이다.
11번가는 2018년 국민연금과 새마을금고, 사모펀드(PEF) 운용사 H&Q코리아로 구성된 나일홀딩스 컨소시엄으로부터 5000억 원을 투자받았다. 이달 30일까지 기업공개(IPO)를 성사시킨다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SK 측 상황과 추석 연휴를 고려하면 시한을 넘길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SK를 믿고 돈을 댄 재무적투자자(FI)들은 현재 투자금을 받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앞으로 SK스퀘어는 투자원금에 연복리 8%를 적용한 약 7000억 원을 H&Q코리아에 돌려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투자자들이 SK스퀘어 보유 지분까지 함께 제3자에 매각(동반매도청구권)할 수 있다. 청구권 행사는 12월부터 가능하다.
이 때문에 SK스퀘어는 계속 원매자를 찾고 있다. IPO 약속 시한은 넘겼지만 투자자들에게 돈을 돌려줘야 하는 최종 시점인 12월까지 아직 시간이 남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앞으로도 적당한 원매자를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아마존 같은 해외 전략적투자자(SI)가 발을 빼면서 현재 11번가에 관심있는 원매자 대부분이 중국 기업이다. SK스퀘어는 알리바바와 징둥 등 여러 중국 업체와 협상을 벌이고 있다.
시장에서는 온라인상거래 기업이 중국으로 넘어갈 때의 후폭풍을 걱정하고 있다. 특히 중국 기업에 대한 개인정보 불법 유출 우려는 오랜 기간 해소되지 않은 민감한 사안이다. 닐슨코리안클릭에 따르면 올 6월 11번가의 모바일앱 방문자수(MAU)는 1397만 명이다. 이커머스 기업들은 고객 이름부터 나이, 휴대전화 번호, 주민등록번호 외에도 계좌번호 같은 개인금융정보까지 갖고 있다. 불법 유출될 경우 심각한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 2021년 국내 1위 이커머스 업체 쿠팡이 고객정보를 중국 자회사를 통해 관리한다는 사실이 국정감사에서 알려지면서 비난이 쏟아진 바 있다. 이후 쿠팡은 중국 상하이와 베이징 자회사에서 담당하던 고객 개인정보 처리 업무를 국내 자회사로 이관했다.
서둘러 기업을 중국 측에 넘길 경우 기업의 성장 기반이 훼손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민들의 ‘반중감정’도 고려 요인이다.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본딴 폐쇄형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본디는 올 초 출시 이후 500만 명이 넘는 고객들이 애플리케이션을 내려 받으면서 인기를 끌었지만 개인정보 유출 문제가 있던 중국 기업이 앱을 운영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용자들이 대거 탈퇴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11번가의 의지와 무관하게 통제 범위 밖에서 정보 유출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잠재적 우려 때문에 대규모 고객 이탈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가격 논란도 적지 않다. 투자 유치 당시 2조7000억 원이었던 기업가치가 지금은 1조 원 안팎으로 떨어졌다. 지난해 기준 국내 온라인 상거래 점유율은 △쿠팡 24.5% △네이버 23.3% △쓱닷컴·지마켓 11.5% △11번가 7% 등이다. 매각을 하더라도 제값을 받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업계에서는 중국 기업들이 1조 원 안팎의 금액조차 지불할지 의문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SK스퀘어는 “현재 알리바바뿐만 아니라 다양한 국적의 기업들과 논의 중”이라며 “올해 안에 인수자의 윤곽이 드러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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