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은 당분간 한국 과학기술계에 타격을 줄 것으로 생각합니다. (과학기술계가) 경각심을 갖고 과학기술 지원 필요성에 대한 인식을 중앙정부에 심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핀의 아버지’로 불리는 콘스탄틴 노보셀로프 영국 맨체스터대 교수는 24일 서울 강남 코엑스에서 열린 ‘노벨프라이즈 다이얼로그(노벨상 수상자와의 대화) 서울 2023’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한국 정부의 내년도 국가R&D 예산 삭감 논란에 대해 이같은 입장을 밝혔다. 그는 “한국만의 문제라고 보긴 어렵다”며 한국 정부에 대한 직접적 평가를 피하면서도 민간의 투자 부담이 큰 과학기술 R&D에 대한 중앙정부의 지원 의무를 에둘러 강조했다.
노보셀로프 교수는 현재 반도체, 배터리 등 다양한 산업에 응용되는 2차원 소재 그래핀을 처음 발견한 공로로 2010년 36세의 나이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1973년 이후 최연소 수상자다. 맨체스터대 박사과정이던 2004년 흑연을 이루고 있는 여러 개의 탄소 층의 하나를 스카치테이프로 간단히 떼어내는 데 성공했다. 과학기술계에서는 창의적 연구성과의 대표적 사례로 회자된다.
이날 간담회에는 노보셀로프 교수뿐 아니라 조지 스무트 홍공과학기술대 교수 등 노벨 물리학상과 화학상 수상자 5인이 참석해 한국 과학기술과 교육 정책에 대한 제언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스무트 교수는 미국의 과학기술 예산 확대를 위한 노력에 힘을 쏟아왔다. 2008년 미국의 회계연도 옴니버스 예산 법안으로 기초과학 연구가 타격을 입자 이를 복구하기 위해 조지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 “국립과학재단(NSF) 등에 긴급 추가 자금을 요청하라”고 촉구하는 서한을 보낸 과학자 중 1명이다.
스무트 교수는 “기초과학은 경제발전에 중요하지만 투자한다고 해도 실질적인 결과가 언제 나올지 장담할 수 없는 분야다”며 “장기적 투자 역량이 이는 정부의 지원이 (다른 분야보다) 절실한 이유다. (정부가) 과학기술 개발과 발전의 선두에 서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한국에 대해 “한국이 빈곤한 국가에서 국내총생산(GDP) 12위가 된 건 자원이 없는 대신 과학기술에 투자한 덕분”이라며 노보셀로프 교수처럼 국가R&D 투자 노력이 꾸준히 이어져야 한다고 에둘러 강조했다.
비다르 헬게센 노벨재단 총재 역시 한국의 경제발전이 그동안의 과학기술 투자 노력 덕분이었다고 짚었다. 그는 “한국은 최근 몇 년간 GDP 대비 과학기술 지출 비중이 1위였고 이런 노력 덕분에 유럽 국가들보다 단기간에 경제발전이 가능했다”며 “노벨상 수상자 수 같은 과학기술 교육과 연구 투자는 국가경제와 상관관계가 있다. 연구 자금과 네트워크에 대한 장기적 투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조성경 과학기술정보통신부 1차관도 행사에 참석해 석학들을 만나 국가R&D 혁신방안을 논의했다. 그는 “과학기술의 영향력은 점점 더 막강해지고 일상생활부터 세계 경제, 사회 구조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과학자들은 연구가 세상에 가져올 변화에 대한 통찰력과 윤리적·사회적 책임을 갖고, 단순히 ‘가능한 기술’이 아닌 ‘옳은 기술’, 인류에게 이로운 기술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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