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저성장 시대에 가파르게 늘고 있는 기업부채는 한국 경제를 위협하는 또 다른 뇌관이다. 특히 자금 여력이 취약한 중소기업들을 중심으로 빚으로 연명하는 좀비기업이 불어나고 대출 연체율도 급등하면서 대규모 금융 부실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5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2분기 기준 기업 신용(빚) 규모는 전년 동기 대비 7.7% 증가한 2705조 8000억 원으로 또다시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기업이 진 빚의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역시 대출(1908조 9000억 원)이었다. 2019년 1800조 원대였던 기업 신용 규모는 2020년 처음 2000조 원을 돌파한 뒤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성장이 정체된 사이 기업의 대출은 계속 늘면서 2분기 국내총생산(GDP) 대비 기업부채 비율은 124.1%까지 치솟았다. 이는 외환위기(113.6%)와 글로벌 금융위기(99.6%) 당시 수준을 넘어선 것이다.
문제는 고금리 기조가 장기화하면서 빚으로 버텨온 부실기업들이 점차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는 점이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기업 100곳 중 35곳은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도 감당하지 못하는 이자 보상 비율 100% 미만 기업으로 조사됐다. 특히 이자 보상 비율이 3년 연속 100%를 밑도는 한계기업은 3903개사로 전체 기업의 15.5%까지 높아졌다. 이 중 5년 이상 한계기업으로 분류된 ‘장기 존속 한계기업’은 무려 903곳에 달했다. 반면 이들 장기 존속 한계기업 가운데 정상기업으로 회복한 경우는 9.9%에 그쳤다. 회복 불능 상태에 빠진 ‘만성 좀비기업’이 만연해 있다는 의미다.
은행 대출조차 여의치 않은 영세 중소기업들은 높은 금리를 요구하는 비은행권으로 밀려났다가 연체에 몰리는 경우도 늘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중소기업의 비은행권 대출 연체액은 23조 9900억 원으로 1년 새 158.5%나 급증했다. 같은 기간 연체율은 1.95%에서 4.61%로 두 배 넘게 높아졌다. 조윤제 한은 금통위원은 “과거 우리가 겪은 세 차례의 경제·금융위기 모두 가계부채나 정부부채가 아닌 기업부채 위기에서 비롯됐다”며 “중소기업의 높은 차입금 의존도와 부채비율, 낮은 이자 보상 비율에 대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진단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