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의 중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모델Y가 지난달 국내 전기차 판매 1위에 올랐다. 저렴한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장착한 중국산 제품을 수입하며 가격을 2000만 원 이상 낮춘 결과다. 정부가 최근 국산 전기차 판매를 늘리기 위해 보조금을 한시적으로 늘렸지만 가격만을 기준으로 한 현 제도로는 값싼 중국산 전기차가 보조금을 휩쓰는 양상이 지속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부품 원산지 규정’처럼 한국산 부품을 많이 쓴 전기차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차별적인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6일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지난달 테슬라 모델Y는 국내에서 4206대가 판매됐다. 8월에는 431대가 팔렸는데 한 달 만에 판매량이 10배나 급증한 것이다. 수입차는 물론이고 국산 전기차 중에서도 모델Y보다 많이 팔린 차종은 없었다. 심지어 지난달 현대자동차·기아·한국GM 등 국내 완성차 제조사의 승용 전기차 판매량을 모두 합쳐도 모델Y에 미치지 못했다. 수입차 업체가 단일 모델을 한 달에 4000대 이상 판매한 것은 이례적이다. 업계의 전통적 강자인 메르세데스벤츠와 BMW도 달성하기 어려운 성과다.
테슬라 모델Y의 수요가 폭증한 것은 대대적인 가격 인하 덕분이다. 기존에 테슬라는 LG에너지솔루션의 니켈·코발트·망간(NCM) 배터리를 장착한 미국산 모델을 국내에 판매했다. 그런데 지난달부터는 중국 닝더스다이(CATL)가 제작한 LFP 배터리를 얹은 중국산 모델Y를 국내에 들여오기 시작했다. LFP 배터리는 에너지밀도가 낮아 주행거리가 짧지만 생산 가격이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다.
테슬라코리아는 단가가 낮은 배터리를 사용하고 한국과 인접한 중국 상하이 공장에서 생산한 차종을 수입하며 출고 가격을 2000만 원가량 낮출 수 있었다. 모델Y 후륜구동(RWD)의 국내 가격은 5699만 원으로 정부가 지급하는 보조금을 100% 받을 수 있는 기준 가격(5700만 원)을 턱밑에서 맞췄다. 여기에 지방자치단체가 지급하는 보조금을 합하면 모델Y의 실제 구매 가격은 4000만 원대로 낮아진다.
업계에서는 중국산 배터리를 사용해 가격을 대폭 낮춘 전기차가 국산 전기차 수요를 압도하며 보조금을 싹쓸이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정부가 국산 전기차 판매를 늘리기 위해 보조금 정책을 일부 바꾸기도 했지만 여전히 전기차 가격이 보조금 지급의 절대적인 기준이기 때문이다. 물론 환경부는 전기차 판매가 둔화하자 올해 말까지 국비 보조금을 최대 100만 원 더 늘렸다. 5700만 원 미만인 전기차를 대상으로 완성차 제조사의 추가 차량 할인 금액에 비례해 국비 보조금을 추가 지급하기로 했다. 국산차가 더 효과를 볼 수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도 “바뀐 보조금 규정은 차량가격 할인과 비례해 보조금을 주기 때문에 국산 제조사 위주로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다만 보조금 기준을 가격으로만 삼다 보니 테슬라 모델Y처럼 생산 단가를 낮춰 출고 가격을 대폭 인하해버리면 소비자의 수요가 몰릴 수밖에 없다는 지적은 있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전기차 보조금 기준을 미국·유럽·중국의 사례처럼 자국 생산 전기차에 유리한 방향으로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단순히 가격뿐만 아니라 국내 생산과 일자라 창출 규모까지 총체적으로 살펴 보조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이 IRA에서 활용 중인 전기차 부품 원산지 규정이 대표적이다. 현재 국내 전기차 보조금 제도는 차량을 어느 나라에서 생산하더라도 기준 가격만 충족하면 차별 없이 보조금을 지급한다. 이를 수정해 한국산 부품을 많이 사용하거나 국내에서의 생산 비중이 일정 비율을 충족한 경우에 한해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서 부가가치를 얼마나 창출했는지 ‘기여 지수’를 만드는 식으로 영리한 보조금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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