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반도체 소재 회사 솔브레인(357780)이 삼성전자(005930)·SK하이닉스(000660)에 HBM 전용 화학적기계연마(CMP) 슬러리를 단독 공급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솔브레인은 지난 2019년 일본 수출 규제 당시 수입 경로가 막혔던 반도체 공정용 불화수소를 국산화한 회사로도 유명하다. 외국 업체들이 장악한 CMP 슬러리 시장에서 특화 제품 단독 양산에 성공하면서 한국 HBM 기술 경쟁력 강화와 국내 반도체 소재 생태계 확장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솔브레인은 HBM 공정 중 불필요한 구리 층을 걷어내는 특수 슬러리를 세계에서 유일하게 공급 중이다. HBM은 D램 칩에 1000개 이상 구멍을 뚫은 뒤 구리를 채워 넣어 배선을 만드는 실리콘관통전극(TSV) 공정을 필수적으로 거친다. 배선을 만드는 과정에서 구리가 D램 표면으로 넘치는데 솔브레인의 슬러리는 기본 임무인 실리콘 연마는 물론 이 구리 층까지 깔끔하게 걷어내는 기술을 독자 개발했다. 회사 슬러리는 통상 D램 배선 평탄화 작업에 쓰였던 실리카 계열 슬러리로 알려졌다.
솔브레인은 국내에서 다양한 반도체 화학 소재를 제조하는 회사다. 2019년 일본 정부가 대법원 강제 징용 판결을 트집 잡아 수출 제한한 반도체 공정용 불화수소를 국산화한 회사로 대중에게 잘 알려졌다. 당시 솔브레인은 불화수소 공급과 함께 CMP 슬러리 개발에 매진하며 미래 먹거리를 준비했다.
솔브레인의 HBM용 슬러리 독자 공급은 의미가 크다. 무엇보다 외국 소재 회사들이 장악하고 있었던 CMP 슬러리 시장에서 국내 소재 업체가 고급 제품을 독보적으로 선점할 수 있다는 사례를 남겼다. 솔브레인이 진입한 구리를 평탄화하는 슬러리는 미국 인테그리스 계열사 캐봇, 일본 히타치 등이 득세하고 있었다. 세계적으로 한정된 공급사 수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가격·공급량 협상에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통상 슬러리는 외국 회사가 먼저 큰 이윤을 취한 뒤 남은 것을 국내 업체가 갖는 구조였다”면서 “기존 공급망 체계가 크게 바뀔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HBM 시장 확대와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관련 투자 확대로 솔브레인 이외 국내 다양한 반도체 업체들이 HBM 공정용 소재 개발에 나서고 있다. 덕산하이메탈(077360)은 HBM 사이에서 데이터 전송을 위한 가교 역할을 하는 범프 제조를 위한 솔더볼을 메모리 회사에 공급한다. 메모리 업체들은 솔더볼 세계 1위 센주메탈의 독주를 막기 위해 덕산하이메탈의 기술 개발을 적극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와이씨켐(112290)(옛 영창케미칼)도 외산 의존도가 높은 TSV용 포토레지스트를 국산화해 국내 주요 반도체 기업에 공급하고 있다. HBM과 시스템반도체를 결합하는 고성능 기판 ‘플립칩-볼그리드어레이(FC-BGA)’를 생산하는 삼성전기(009150)·LG이노텍(011070)·대덕전자(353200) 등도 앞으로 생산량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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