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것 빼고 다 있다’는 백화점에서 찾아볼 수 없는 게 있다. 바로 시계와 창문이다. 방문객들의 시간관념을 없애 쇼핑에 빠지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을 지나며 온·오프라인 간 경계가 무너지자 이 같은 전략을 수정하는 백화점이 많아지고 있다. 방문객들의 체류 시간을 늘리는 것은 둘째 치고 일단 매장에 나오게끔 하는 게 급선무가 됐기 때문이다.
2020년 한국건축문화대상 준공건축물 부문 우수상을 받은 갤러리아 광교(2020년 3월 오픈)도 오프라인 소비 위축이라는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고민 끝에 탄생한 결과물이다. 백화점에는 창문이 없다는 공식을 깨고 유리 통로를 활용해 업계 최초로 전 층에 빛을 들여오고 판매 면적 10%를 과감히 줄이는 대신 문화 공간을 조성했다. 그 결과 오픈 3년 만에 연 매출 6000억 원대를 기록하며 경기 남부권을 대표하는 백화점으로 자리 잡는 데 성공했다. 2021년에는 이 같은 노력을 인정받아 유네스코가 선정하는 ‘베르사유건축상’ 쇼핑몰 부문에서 세계 1위를 거머쥐었다.
문지영 한화갤러리아 인테리어팀장은 “단순히 물건을 팔려는 욕심만 채웠다면 갤러리아 광교를 완성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물건이 아닌 문화를 파는 백화점을 지향했다”고 말했다.
갤러리아 광교의 설계 의도는 ‘굳이 찾아올 만한’ 백화점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는 외관에서부터 명확히 드러난다. 빽빽한 아파트 숲 속 한가운데 솟아오른 거대한 암석 형태의 외관과 그 속에 박힌 원석처럼 빛나는 유리 통로가 마치 불시착한 UFO처럼 이질적이지만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설계를 맡았던 간삼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의 원신희 건축가는 “갤러리아 광교가 호수공원과 중심 업무지구 사이, 자연과 도시 환경의 교차점에 있다는 데 주목해 ‘호숫가에 있는 큰 바위’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며 “단순 상업 시설이 아닌 도심 속 여유와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해 방문객들이 찾아오고 싶고 오래 머물고 싶은 백화점을 만드는 게 설계의 시작이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설계 의도를 구현하기 위해 갤러리아 광교는 바로 앞 오피스텔과 연결해 광교 호수공원까지 이어지는 지하 통로를 만들었다. 백화점이 호수로 갈 수 있는 일종의 산책로가 된 셈이다.
암석을 닮은 외관을 연출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연의 느낌을 주기 위해서는 실제 자연 그대로를 재료로 써야 했다. 이를 위해 설계팀은 중국에서 공수한 화강석을 한 변 길이 60㎝의 삼각형 모양으로 일일이 깎아 일종의 타일인 파사드를 제작했다. 보통 상업 시설 건축물 외벽에는 인조석이 쓰인다. 이 같은 과정을 거쳐 만든 14종의 색상 총 2만 3709개의 파사드를 모자이크 방식으로 외벽에 붙여 겹겹이 세월이 퇴적된 암석층 단면을 구현했다. 문 팀장은 “외벽 파사드를 구하기 위해 중국 출장만 5~6번을 갔을 정도로 심혈을 기울였다”며 “입체적인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 한 가지 색상의 파사드도 표면을 거친 버전, 반질반질한 버전 두 종류로 나눠 제작했다”고 말했다.
지상 1층부터 12층까지 총 540m 길이로 마치 뱀처럼 건물을 휘감고 있는 유리 루프는 가장 고난도의 기술을 필요로 했다. 삼각형 유리 1451장을 3차원(3D) 프린터로 각각 다른 모양으로 자른 뒤 9장의 꼭짓점을 모아 붙여 하나의 접점(노드)을 만들었다. 그 접점이 모여 거대한 암석에 박힌 원석과 같은 입체감을 완성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일부 루프는 건물에 매달려 있는 형태로 바닥을 지탱해줄 힘이 필요했다. 이 과정에서 유리에 압박이 가해져 금이 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관건이었다. 유리 천여 장을 각각 다른 모양으로 잘라야 하는 공법에 전 세계 1위 실력을 자랑하는 중국 유리 업체도 혀를 내둘렀다. 원 건축가는 “유리 루프에 공간을 할애하면서 백화점 판매 면적이 5~10%가량 줄었지만 고객 경험이라는 설계 목적을 위해서는 꼭 필요했던 공간”이라고 강조했다.
유리 루프는 밑바닥이 투명하게 보이는 아찔한 스카이워크(9층), 패션쇼가 열리는 계단식 관람석(3층), 국내 최대 규모의 삼성전자 플래그십 스토어(6~8층)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건물 내부는 역동성을 강조했다. 방문객들이 ‘굳이’ 찾아온 만큼 한 건물에서 다양한 공간을 경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이를 위해 갤러리아 광교는 층마다 다른 보이드타워 디자인을 적용했다. 각 층을 연결하는 에스컬레이터 동선을 의미하는 공간인 보이드타워는 고객이 처음으로 마주하는 층의 첫인상과도 같다. 예를 들면 명품 매장이 있는 2층은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리면 마치 보석함에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연출했다. 여성 의류 층은 각 매장이 마치 화려한 진열장에 들어 있는 것처럼, 남성 의류 층은 나무 색감의 벽을 사용해 선반에 놓여 있는 것처럼 만들었다. 원 건축가는 “갤러리아 광교 내부를 수직으로 오르내리는 이동의 순간에도 고객들이 층에 따라 달라지는 독특하고 개성 있는 공간 디자인을 통해 시각적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말했다.
9층 델리코너는 실외에 주로 쓰이는 마감재를 사용해 실내에 있지만 마치 야외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고 지하 1층 마켓은 유럽의 울퉁불퉁한 바닥을 구현해 여행을 온 듯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가장 공을 들인 공간은 9층 고메월드와 12층 VIP 라운지다. 푸드코트 형태의 9층 고메월드는 원형 창문을 내 바깥 풍경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하고 테이블을 창문 바로 앞에 놓아 식당가가 아닌 고급 레스토랑 분위기로 꾸몄다. 사방이 꽉 막힌 타 백화점과 달리 갤러리아 광교 VIP 라운지는 높은 층고와 투명한 유리 루프로 자연 채광을 마음껏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옥외 중정과 연결돼 있는 쿠킹 스튜디오는 전면 접이식 문을 통한 공간 확장이 가능해 소규모 연회 등을 즐길 수 있다.
갤러리아 광교는 기존 백화점의 고정관념을 완전히 뒤집은 상업 시설이다. 안과 밖의 소통을 가로막는 차단되고 보이지 않는 정육면체 덩어리가 아니라 자연광을 내부로 끌어들여 주위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개체로 탈바꿈했다. 공동 설계를 맡은 네덜란드의 건축사무소 OMA 소속 건축가 크리스 반 도이즌은 갤러리아 광교에 대해 ‘백화점이 될 뻔한’ 대중적인 공간이라고 평가했다. 원 건축가는 “향후 국내에서 백화점을 비롯한 상업 시설은 점점 더 복합시설로 발전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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