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조 5000억 원 규모의 루마니아 원전 설비 개선 사업에 원천 기술을 가진 캐나다 캔두에너지, 이탈리아 안살도뉴클리어뿐만 아니라 한국수력원자력도 핵심 멤버로 사실상 낙점된 것은 월성 1호기의 계속운전을 위한 압력관 교체 성공 경험과 뛰어난 시공 관리 능력 등을 높이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특히 한수원 설립 이래 최초의 해외 설비 개선 사업에 참여하는 것이어서 의미가 남다르다. 이번 3자 컨소시엄 협약을 계기로 한수원과 한국의 원전 산업계가 대규모 설비 개선 시장에서 주요 공급사로 자리매김할 교두보를 확보했다는 평가다.
12일 한수원 등에 따르면 2026년 12월 말 1차 운영 허가 기간(30년)이 만료되는 루마니아 원전 체르나보다 1호기는 월성 2·3·4호기와 동일한 캔두-6(706㎿) 노형이다. 수명 연장을 위해 2027년부터 압력관과 터빈발전기 구성품 교체에 착수한다는 것이 루마니아 원자력공사(SNN)의 구상이다. 이 같은 일정에 맞춰 SNN은 올 12월 제안요청서(RFP)를 발송하고 내년 상반기 중 설계·조달·설치(EPC) 주계약 체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원전 수출 강국 도약을 국정 목표로 내건 윤석열 정부와 한수원은 루마니아 원전 설비 개선 사업에 일찌감치 눈독을 들여왔다. 실제 올 5월 루마니아를 방문한 한덕수 국무총리는 니콜라에 치우커 루마니아 총리와 만나 “양측이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에너지 전환 건설 인프라 분야에서 협력을 모색하기로 했다”며 “한국 기업의 루마니아 원전 설비 개선과 신규 원전 건설 사업 참여 가능성에 대해 적극 검토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문제는 각각 체르나보다 1호기 원자로 계통, 터빈발전기 계통의 원설계사인 캔두와 안살도 등 강력한 경쟁자의 존재였다. 이들의 틈바구니에서 한수원은 2009년 4월부터 2011년 7월까지 27개월 만에 월성 1호기의 10년 수명 연장을 위한 설비 개선을 완수한 이력을 적극 어필했다. 월성 1호기와 같은 700㎿급 중수로형 원전의 압력관 교체에 평균 41개월이 소요됐음을 감안하면 압도적인 속도였다. 한수원이 2021년 대형 기자재 공급 사업, 올해 6월 2600억 원 규모의 삼중수소 제거 설비 건설 사업을 잇따라 수주하는 등 수년간 발주사인 SNN과 돈독한 협력 관계를 유지해온 점이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국내 원전 대·중견·중소기업들의 사업 동반 참여도 예상된다. 최종적으로 수주가 성사되면 한전KPS와 두산에너빌리티는 일부 기자재 공급을, 현대건설과 삼성물산은 방사성폐기물 저장시설 등 인프라 건설을 맡을 예정이다. 한수원 관계자는 “원전 산업 생태계 정상화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와 한수원은 루마니아를 발판 삼아 유럽 원전 시장 공략을 가속화할 방침이다. 폴란드와 체코에서는 한수원을 중심으로 한 ‘원전 수출 원팀 코리아’가 이미 수주전에 뛰어든 상태다. 폴란드 퐁트누프 신규 원전 사업은 현지 정부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으며 체코 두코바니 신규 원전 사업은 곧 최종 입찰제안서를 제출한다. 한국전력 역시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고자 2050년까지 원전 8기를 더 짓겠다는 영국에 진출하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올 11월 영국 찰스 3세 국왕 부부의 초청으로 국빈 방문한 자리에서 우리 기업의 영국 원전 사업 참여를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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