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서귀포시에 위치한 ‘빛의 벙커’는 연간 50만 명이 들르는 ‘랜드마크’ 미술관이다. 국가 기간 통신시설이었던 건물이 20여 년간 방치된 후 지난 2018년 빛과 음악, 세계적 미술작품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런데 특이점이 있다. 이곳에는 미술 작품이 한 점도 걸려있지 않다. 이곳이 ‘몰입형아트 전시관’이기 때문이다.
버려진 벙커를 미술관으로 만들어낸 사람은 IT기업 ‘티모넷’의 박진우 대표. 지난 13일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한 박 대표는 “몰입형 아트 전시는 일년에 수십 대의 서버를 쉬지 않고 가동해야 운영이 가능하다, 이는 티모넷이 IT 기업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말했다.
티모넷은 버스카드 ‘티머니’ 모바일 애플케이션(앱)을 개발한 IT기업이다. 기술 사업만 10년 넘게 해 오던 박 대표가 예술로 눈을 돌린 건 프랑스에서 발견한 ‘빛의 채석장’ 덕분이다. 그는 “인구 1만5000명의 작은 동네에 위치한 버려진 채석장에서 환상적인 몰입형 아트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며 “가족들과 이 곳에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너무 멀어서 우리나라에 만들겠다고 결심 했다"고 말했다. 그는 바로 다음 날 제작자 컬처스페이스를 찾아갔다고, 이후 두 회사는 협업해 제주도에 ‘빛의 벙커’를 열었다. 작품을 물색하고 저작권을 확인하는 등 전시 기획과 관련된 일은 컬처스페이스가, 아시아 전역에서 진행될 사업은 티모넷이 담당하는 방식이다.
몰입형아트 전시는 미술품을 미디어 아트로 전시하는 전시 기획이다. 그저 벽에 작품을 상영하는 수준이 아니다. 작품은 움직이고, 이야기한다. 이로써 관람객은 작품의 일부가 되는 환상적인 경험을 한다. 제주도 ‘빛의 벙커’는 문을 열자마자 독특한 문화적 경험을 원하는 관광객 사이에서 입소문이 났다.
‘빛의 벙커’ 성공에 힘입어 팀넷은 지난해에 서울 광진구 워커힐 호텔에 ‘빛의 시어터’를 열었다. 이 곳 역시 지어진 지 60년 돼 활용도가 떨어진 옛 극장이었지만, ‘몰입형 아트’를 만나 클림트, 달리의 전시가 열리는 미술관으로 탈바꿈했다. 연평균 제주와 서울, 두 전시관을 찾는 관람객은 100만 명에 이른다.
최근 국내에는 수십 개의 ‘몰입형 아트 전시’가 난립하고 있다. 미술 시장의 성장도 있지만 티모넷이 성공한 영향이 크다. 하지만 ‘빛의 벙커’나 ‘빛의 시어터’는 명백히 다른 전시와 차이가 있다. 티모넷이 하나의 전시를 기획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무려 7개월. 박 대표는 “우리가 2차 저작권을 갖고 있다 해도 원작의 이념을 바꾸지 않는 게 중요하다”며 “티모넷의 일은 원작의 사상을 잘 살려내며 관객이 즐거움을 더하기 위해 기술을 더 잘 적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티모넷이 들이는 자원은 어마어마하다. 연간 70여 대의 미디어 서버를 365일간 쉬지 않고 돌린다. 또 7테라 바이트에 이르는 콘텐츠를 상영하기 위해 60여 대의 스피커와 프로젝트를 동시에 제어하는 일도 쉽지 않다. 티모넷 직원이 90여 명에 이르는 이유다.
문화기업으로 탈바꿈한 티모넷은 이제 세계로 진출할 꿈을 키우고 있다. 박 대표는 “내년 도쿄에 또 다른 몰입형아트 전시관을 열 것”이라며 포부를 밝혔다. 또한 국내 작가의 전시를 미디어로 구현해 해외에서 전시하는 사업도 구상 중이다. 박 대표는 “IT는 기술일 뿐 교통이든 다른 분야에 잘 적용되는 게 더 중요하다”며 “티모넷은 IT로 문화와 예술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이 되어 사람들의 라이프사이클을 바꾸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